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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길]] 전음설 ===
전음설을 살펴보면 대부분전음설은 물길과 말갈이 족칭이 바뀐 것이 아니라 동일한 단어가 시기적인 차이를 두고 다르게다른 번역된글자로 차음된 것으로 본다보는 견해이다. 물길과 말갈을 같은 음이라고 보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는 《[[통지]](通志)》로, ‘말갈(靺鞨)’이라는 이라는단어에 단어의 주음에서대해 “물길, 말갈은 그 음이 서로 근접 한다(勿吉, 靺鞨其音相近)”라는 기록이다. 그런데 현대 [[중국어]]에서 물길({{zh|order=t|t=勿吉|p=Wùjí}})과 말갈({{zh|order=t|t=靺鞨|p=Mòhé}})은 음이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말갈은 대부분 말갈(靺鞨)로 표기되었지만, 이역(異譯)으로 말갈({{zh|order=t|t=靺羯|p=Mò jié}})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길과 말갈을 같은 말로 보는 입장에서는 수당대의 독음을 연구하여 당시에는 비슷한 음이었음 밝히고기록한 있다것이다.<ref name="JUNG"/>
 
웨이궈중은웨이궈중(魏國忠)은 [[당나라|당대]]의 ‘말갈(靺鞨)’ 은 ‘말갈(靺羯)’ , 즉 말걸({{zh|order=t|t=末杰|p=Mòjié}})로만 읽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ref>魏國忠, 「關於勿吉族的幾介問題」, 『東北民族史硏究(二)』, 中州古籍出版社, 1994.</ref>
 
쑨위량과쑨위량(孫玉良)과 자오밍치는자오밍치(趙鳴岐)는 말갈이 처음 출현했을 때 ‘靺鞨’ 이’이 아닌 ‘ ’ 로’로 썼고 '웨이지에(weijie)'로 읽었다고 한다. 즉 ‘靺羯’이 물길의 음전이라는 것이다. ‘靺羯’ 이’이 말갈(靺鞨)로 개작(改作)된개칭된 것은 모양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독음]]상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 [[중화서국]](中華書局) 교점본(校點本) 『[[24사]](二十四史)』가 간행되면서 ‘ ’ 을 전부 ‘靺’ 로 고치고, ‘ 羯’ 대신 철저하게 ‘靺鞨’ 을 사용하게 되었다 한다.<ref>張博泉孫玉良・趙鳴岐(1998), 『中國東北古代民族·考古與彊域 제2권, 吉林大學文史出版社.</ref><ref>{{서적 인용|author1=정병준|author2=권은주|author3=이효형|author4=바이건싱|author5=윤영인|author6=김위현|author7=왕위랑|authorlink=|title=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 연구|series=|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61870566|page=31~32}}</ref>
 
자오잔은자오잔(趙展)은 [[한자]]의 옛 음에 따르면 말 물(勿)자는 막발절(莫勃切)로서, 그 음은 몰(沒, mo)이요, 길할 길(吉)자는 격질절(激質切)로서, 그 음은 길(拮, jie)이고, 《[[북제서]](北齊書)》에 제일 먼저 물길(勿吉)을 말갈(靺鞨)<ref group="주">갈자는 기사절(居謁切)로 음은 '訐', jie)이다.</ref> 어음상으로 보면 물길(勿吉)은 말갈(靺羯)과 독음이 매우 비슷하여 대체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그러나 羯자에는 양 양(羊)자의 변이 있어 종족의 명칭로서는 아마 점찮지 않은 말로 여겨져서 또 羯자를 鞨자로 고치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또한 鞨자에는 여러 가지 음이 있는데, 하갈절(何葛切)은 그 음은 갈(曷, he)으로, 현재 말갈(靺鞨)의 갈(鞨)은 일반적으로 모두 갈(曷, he)의 독음을 취한다고 주장했다.<ref>趙展, 「滿族歷史與宗敎硏究」,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ref>
 
==== 거주지에서의지명에서의 유래설 ====
장보촨은장부촨(張博泉)은 물길, 말갈, [[발해]]의 명칭 모두 하나의 음이 변한 것이라는 주장하였다.<ref>孫玉良・趙鳴岐張博泉(1998), 『中國東北古代民族·考古與彊域 제2권, 吉林文史大學出版社.</ref> [[퉁구스어족]]의 독음에서 m과 b, p, f는 서로 통하고, j, g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물길, 말갈(靺羯), 말갈(靺鞨)은 같은 음이었고 역시 발해로 변할 수도 있었다는 추측이다. 물길, 말갈, 발해는 [[만주어]]의 워지(窩集, {{llang|mnc|{{MongolUnicode|ᠸᡝᡷᡳ}}|Weji}})로 그 뜻은 ‘산림’ 을‘산림’을 가리킨다. 물길 또는 말갈은 산과 물을 따라 거주했는데(居山水), 이들을그는 남북조 시기의 [[선비족]]이 물길이라고 불렀던 것이 [[중원]]에 전달된 것이라고 보았다. 우선 물(勿)은 몰(沒), 말(靺)처럼 읽히고, 말(末)의 음에서부터 발(渤)이 전음되었다는 것이다. 선비어에서 몰(沒), 몰리(沒里)라고 부른 것은 [[동호족동호]]의 물(水)을 가리키는 말인 목(木), 목(沐), 혹은 목련(沐漣), 목륜(木倫)[[무렌]]과 같다고 한다. 길(吉), 걸(羯), 갈(鞨)의 경우 하나의 음이 변한 것으로, j, g가 서로 변하고 k, h로 전독(轉讀)되었는데 그 뜻은 사람이다[[사람]]이다. 즉, 물길·말갈계는 수변에물가에 거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강인(江人)·강민(江民)을 [[북위]]가 그것을 물길로 불렀던 것이 말갈로 전음되었다는 것이다.<ref name="JUNG"/> [[일본]]의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강의에서 말갈이 동북지방의 [[여진족]]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물길·말갈의 어원을 [[흑룡강]]을 뜻하는 ‘Magu’에서‘마구(Magu)’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했다.<ref>鳥山喜一(1915), 『渤海史考』, 奉公叢書 第3篇, 船木勝馬 校訂·解題(1977), 原書房.</ref>
 
==== 특정 물건에서의 유래설 ====
판언스는판언스(範恩實)는 말갈이라는 명칭 자체는 [[한반도]]에서 사용되었으며,사용된 이것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것이 [[고구려]]에
복속된 [[백산말갈]]이 중원과 접촉하게 되면서라고되면서 보았다.<ref>範恩實,중국에 「靺鞨族屬及渤海建國前的靺鞨與周邊關係」,전해진 王小甫것으로 主編, 『盛唐時代與東北亞政局』, 北京大學盛唐硏究叢書, 上海辭書出版社, 2003</ref>보았다. 그리고 말갈이라는 단어 자체는 [[숙신]]계의 석노(石砮)에서 유래했다고 보았다. ‘말갈(靺羯{鞨})’ 단어의 독음을 살펴보면, 먼저 ()은 mo, wa 두 개의 음이 있었다.있었는데, 이중이가운데 비교적 일찍 나타난 것이 wa음이다wa였다. [[중고한어]]의 a음류는 대부분 ə로 발전했고, 남북조 말기 이후에 말(靺)도 wə로 바뀌어 읽혔다. 말(靺)자가 mə로 읽히게 된 것은, 중고음 중에 w, m 두 개의 성모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m으로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갈(羯)자는 고대에 경전을 번역할 때 ka]음에ka에 많이 이용되어 羯麻(karma), 羯那陀(kanada), 羯陵伽(kalinga)처럼 음역했다. 갈(羯)이 jie로 읽히면서 갈족(羯族)을 가리키게 된 것은 비교적 뒤늦게 나타난 현상으로 말갈(靺羯)의 갈(羯)은 ka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k, h는 동일하게
설근음(舌根音)으로 중고에서는 통음(通音)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갈(鞨)자로 바꿔 사용한 이후, 통전되어 갈(羯)자는 he로도 읽혔다. 말갈(靺羯)의 음은 현대 [[만주어]]의 석두(石頭, {{llang|mnc|{{MongolUnicode|ᠸᡝᡥᡝ}}|Wehe}})와 [[여진어]]의 석두({{llang|juc|wəhə}})의 음과 같다. 판언스는 [[백제]]·[[신라]] 사람이 석촉을 사용하던 숙신인의 종족적 특징 때문에 이들을 처음으로 말갈(靺羯, Wehe)라고 불렀던 것에서 말갈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보았다추정했다.<ref>{{서적 인용|author1=정병준|author2=권은주|author3=이효형|author4=바이건싱|author5=윤영인|author6=김위현|author7=왕위랑|authorlink=|title=중국학계의그런데 북방민족·국가[[위진남북조]] 시기에 이르러 입공물(入貢物)인 석촉이 일종의 홍색 연구|series=|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보석]]|isbn=9788961870566|page=33}}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중원인이 이 보석을 말갈(靺羯)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보았다. 수당 이후에 성모학(聲母學)이 정식으로 생겨서 갈(羯)자의 독음이 ‘거알절(居謁切)’로 고정되었고 ‘갈(鞨)’이 새롭게 만들어져 he를 대체함으로써 ‘말갈(靺羯)’에서 점차 말갈(靺鞨)로 변화했다고 보았다.<ref>範恩實(2003), 「靺鞨族屬及渤海建國前的靺鞨與周邊關係」, 王小甫 主編, 『盛唐時代與東北亞政局』, 北京大學盛唐硏究叢書, 上海辭書出版社</ref>
 
그런데 [[위진남북조]] 시기에 이르러 입공물(入貢物)인 석촉이 일종의 홍색 [[보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중원인이 이 보석을 말갈(靺羯)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봤다. 수당 이후에 와서는 성모학(聲母學)이 정식으로 생겨서 갈(羯)자의 독음이 ‘거알절(居謁切)’로 고정되었고 ‘갈(鞨)’ 자가 새롭게 만들어져 he음을 대체함으로써 ‘말갈(靺羯)’ 서술에서 점차 말갈(靺鞨)로 변화했다고 보았다.<ref>{{서적 인용|author1=정병준|author2=권은주|author3=이효형|author4=바이건싱|author5=윤영인|author6=김위현|author7=왕위랑|authorlink=|title=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 연구|series=|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61870566|page=33~34}}</ref>
 
==== 새로운 족명설 ====
리더산리더샨(李德山)은 물길은 숙신과 [[예맥족]]이 융합되어 형성된 새로운 명칭으로 원래 ‘맥신(貊愼)'인데, 북위가 독음할 때 ‘물길’ 로‘물길’로 발음하면서 전음된 것으로 보았다.<ref>李德山, 「六至九世紀東北邊疆民族與中央王朝關系史硏究」, 2006</ref> 리더산은그는 [[280년]]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숙신인 600여 가가 고구려에 의해 사민 당하고, 6~7개 부락이 항복했던 사례와 말갈이 매번 고구려를 노략했다는 기사, 북위 시기 [[부여]]가 물길에게 쫓겨난쫓겨났다는 기록가설, 고구려의 10부락을10부를 공파한 사건 등을 들어 이 과정에서 예맥계와 숙신계가 융합되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구려가 [[북위]] 등 선비계에 의해 압박을 받던 시기에, 새롭게 숙신계가 대거 남하하여 종족 융합이 이뤄졌다고 보았다. 이때 [[송화강]] 중하류 유역으로 진입한 숙신계의숙신계는 일부가 부여인을 복속시키고부여인, [[옥저]] 지역으로 남하한 일부는숙신계는 이들 지역을 장악한 후 각각 그 지역의 예맥계와 그 이전 시기에 남하했던 숙신인들과옥저인과 융합하면서 숙신인이 주체가 된 새로운 민족을 탄생시키는데,탄생되면서 물길이라는 명칭은 이 때문에 생겼다고 보았다추정했다.<ref>{{서적李德山(2006), 인용|author1=정병준|author2=권은주|author3=이효형|author4=바이건싱|author5=윤영인|author6=김위현|author7=왕위랑|authorlink=|title=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 연구|series=|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61870566|page=34}}「六至九世紀東北邊疆民族與中央王朝關系史硏究」</ref>
 
== 《[[삼국사기]]》의 말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