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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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오사카]]에서 목장 노동자였던 아버지 이충우(李忠雨)와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채태원 사이에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해방 직후 귀국해 [[포항시|포항]]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이사하여 막노동을 비롯해 온갖 잡일을 하던 중 청계천 헌책방 주인에게 얻은 책으로 대입 준비에 들어갔고, 어머니가 좌판 일을 하던 이태원 시장의 상인들 도움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1220/010020071220.1006092851.html |제목=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샐러리맨 신화'이어 '대권 도전'도 성공 - 부산일보 |확인날짜=2016-03-1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25211943/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1220/010020071220.1006092851.html |보존날짜=2016-03-25 |깨진링크=예 }}</ref>
 
이태원시장에서 매일 새벽 청소 일을 하는 환경미화원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생활고를 피해 군대에 입대했으나 기관지확장증으로 진단받아 훈련소에서 강제 퇴소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0496210 李 '기관지 확장증으로 병역 면제'- 뉴시스]</ref><ref>[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292776&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이명박, 검찰DNA 검사로 '출생의혹'해소 - SBS뉴스]</ref><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8/20/20070820001235.html 이명박, 도전과 열정의 신화 - 세계일보]</ref> 3학년 때 상대 학생회장에 당선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을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했다. 경찰에 체포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했다. 대학 졸업 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취업이 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어렵게 현대건설에 입사해 5년 만에 이사가 됐고 12년 만인 1977년엔 37세 나이로 현대건설 사장이 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이 과정에서 1970년엔 6살 연하의 김윤옥과 결혼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1220/010020071220.1006092851.html |제목=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샐러리맨 신화'이어 '대권 도전'도 성공 - 부산일보 |확인날짜=2016-03-1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25211943/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1220/010020071220.1006092851.html |보존날짜=2016-03-25 |깨진링크=예 }}</ref> 1992년에 [[현대건설]] 회장직을 그만두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14대 전국구 국회의원에 이어 15대 지역구 국회의원<ref>이명박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재임기간 [[1996년]] [[5월 30일]] ~ [[1998년]] [[2월 21일]]</ref>을 지내던 중, [[대한민국 공직선거법|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위반죄]]혐의로 피소되어 1997년 9월 1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1998년 2월 항소를 진행하던 중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1998년 4월 항소심서 벌금 400만 원 형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42900209119010&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4-29&officeId=00020&pageNo=19&printNo=23863&publishType=00010 이명박 전의원 항소심 400만원 벌금형 - 동아일보]</ref> 이후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으로부터 객원연구원으로 초대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8/20/20070820001235.html 이명박, 도전과 열정의 신화 - 세계일보]</ref>1999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400만원이 확정되었으나, 200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사면복권]]된 후, 민선 3기 32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돼 [[청계천 복원 사업]]<ref>[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8 박경리와 MB, <토지>와 청계천] [[시사인]]</ref><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403050238 소설가 박경리씨 특별기고 청계천, 복원 아닌 개발이었나!] [[동아일보]]</ref><ref>[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12/005000000200112311833001.html 작가 박경리씨 '청계천에 생명을'] [[한겨레 신문]]</ref><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03/h2012033002342221950.htm "어머니 故박경리도 청계천 생명력 원했다"]{{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03/h2012033002342221950.htm }} [[한국일보]]</ref>, 서울시 대중 교통 환승체계 구축<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441190 서울시내버스업체 대표들 평균연봉 2억815만원‎] [[중앙일보]]</ref><ref>[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18_0012443426&cID=10201&pID=10200 버스업체 배만 불리는 버스준공영제?…10년 적자보전금액만 1조4600억원] [[뉴시스]]</ref><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05/h2012051715220421950.htm 서울 버스기사 월급이 대체 얼마기에… 발칵] {{웨이백|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05/h2012051715220421950.htm |date=20131023061420 }} [[한국일보]]</ref><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02215141659588 서울버스 정비사, 1명이 8대 넘게 관리] {{웨이백|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02215141659588 |date=20131023055531 }} [[아시아 경제]]</ref><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92510460317537 '혈세' 2000억대 보조금은 버스업체 쌈짓돈?] [[아시아 경제]]</ref><ref>[http://daejeon.kbs.co.kr/news/news_01_01_view.html?no-3219891&find_date=20131004 준공영제 시행 전만 해도 만성적인 인력난 그러나 준공영제 이후 대우가 좋아지면서 "뒷돈 없이는 입사 불가" 버스기사 증언]{{깨진 링크|url=http://daejeon.kbs.co.kr/news/news_01_01_view.html?no-3219891&find_date=20131004 }} [[KBS]]</ref> 서울숲 조성 등의 업적을 남겼다.<ref>[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462764&plink=OLDURL 서울숲 찾은 mb - 후진타오, '환경'에 깊은 관심] [[SBS]]</ref> [[2007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제17대 대선]]에서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2위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역대 최대 표차인 521만 여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0413697이명박 사상 최대표차 압승 - 한국일보]</ref> 이듬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정부 조직의 대대적인 통폐합안을 발표하고,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뼈대로 '경제살리기'의 기치를 내걸었다.<ref name="hani.co.kr">{{뉴스 인용|제목=한나라 "새 정부 이름은 실용정부" |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257347.html|출판사=한겨레|저자=황준범|날짜=2007-12-16}}</ref>
 
집권 초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되자 MBC PD수첩을 비롯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하면서<ref>{{뉴스 인용 |title=대법 "MBC '광우병 보도 사과방송' 정정보도 안해도 돼" |url=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6071317271527479 |work=머니투데이 |date=2016년 7월 14일}}</ref> [[2008년 대한민국 촛불 시위|광우병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재협상을 약속하면서 시위는 잦아들었다. 2008년 9월에는 미국발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글로벌금융위기로 같은 해 4분기 들어 미국과 일본, 유럽 선진국들의 GDP 성장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0월 한 달 동안 아이슬란드,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헝가리, 벨로루시 등 5개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외신들은 한국의 경제를 비관하며 5개국의 뒤를 이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제일먼저 국가부도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F)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등 한국의 부도위험은 사상 최고수준으로 치솟았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02339511 한국 ‘부도위험’ 사상 최고수준 치솟아 2008.10.24 - 한국경제]</ref> 이에 대내적으로는 미국, 일본, 중국 등과 통화스와프 체결, 매주 비상경제대책회의 주재, 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통한 위기극복에 나섰고, 대외적으로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글로벌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금융위기를 극복하며 ‘위기 통제에 만점을 받아 교과서적인 경제회복을 이루어낸 국가’라는 평가를 외신으로부터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921637 취임3년 개헌. 경제. 대북. 외교 현안 2011.02.20 - 연합뉴스]</ref><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71401073724256002 한국은 위기극복 교과서적 사례 2010.07.14 - 문화일보]</ref><ref>[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502084 FT"한국은 ‘교과서적 경제회복’ 달성" 2010.04.28 - 연합뉴스]</ref> 한편 경제위기 극복이 가시화 되는 상황에서 국정기조를 ‘친 서민 중도실용’으로 삼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과 서민 살리기 행보에 나섰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9081511554506940&outlink=1 MB ‘중도실용, 친서민’ 국정철학 제시 2009.08.15 - 머니투데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