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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이트 제거됨 ,  4개월 전
|제목=이곳이 수용소
|출판사 = 뉴데일리
|날짜=2011-02-07}}</ref> 여기는 3년이 아니라 한 달로 나온다. 북한당국의 반응과 리인모의 불이익당하는 모습은내용은 없다.
 
2013년 뉴스파인드는 칼럼에서 리인모가 선전용 [[교화소]]를 둘러보고 나서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곳에서는 34년이 아니라 3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후 그를 활용한 모든 선전활동이 중단됐고 이후 그는 사회와 고립돼 외롭게 연명하다 2007년 6월 생을 마쳤다는 주장도 있다<ref>《뉴스파인더》 (2013.3.18) [http://www.newsfinder.co.kr/news/article.html?no=18865 북송됐던 리인모, 과연 행복했을까]</ref>고 주장했다. 주장의 근거는 밝히지 않았고 수형시설 개선 건의 내용은 없으며 리인모가 불이익을 받는 모습을내용이 기록하고 있다나온다.
 
2015년 3월 13일 동아일보는 탈북자 김미란의 증언 기사에서 증산교화소에 이인모가 와서 이 교화소에서는 일년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란 말을 한 다음부터 이인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f>{{저널 인용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2015.03.13}}</ref>
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는 3년이 아니라 1년으로 나온다.돼 있고 리인모가 북한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리인모가내용이 그려진다나온다.
 
특히 2017년 전 조선-체코 신발 합영회사 사장 김태산이 쓴 조선펍 글에는 기존의 자료에는 보이지 않던 내용이 등장한다. 리인모가 교화소 관련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김정일이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게 못돼”라고 화를 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리인모의 말이 나온 순간부터 30분도 채 되기 전에 노동당과 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3개의 통보선으로 리인모의 교화소 행적과 발언 내용이 김정일에게 직보되었고 이에 대한 김정일의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리인모는 “당과 수령의 신임을 저버린 쓸모없는 고깃덩이” 취급을 받았고 마침내 2007년 6월 누구도 찾지 않는 속에서 고독한 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ref>{{저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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