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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9년 주간조선 기사부터는 문제의 교화소 발언으로 리인모가 불이익을 당하는 식의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초창기 기사에 등장하지 않았고 불이익받은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으며 발언 내용도 3년, 1년, 한 달 등 약간씩 다르게 나타난다. 심지어 2017년 조선펍 기사에 이르러서는 리인모의 폭탄발언을 전해들은 김정일이 화를 내었다고 나온다. 2001년 문제의 발언이 있었고 리인모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면 2002년 이후의 북한 교화소 변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 또 리인모가 2002년 6월엔 금강산에서 남측 딸을 만나고 2003년 9월 24일 자신의 집을 방문한 한완상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송환 당시 통일부총리였던 한완상은 이날 식물인간 상태라는 리인모를 찾아보고 북송 후 10년째 살고 있어 놀랐다고 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2005년 11월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자료 ‘북한의 인권개선 노력'을 통해 밝힌 내용이나 2006년 데일리NK 기사, 2008년 리준하의 책 ‘교화소 이야기'를 봐도 북한 당국이나 김정일이 리인모의 건의에 화났거나 푸대접했다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2007년 6월 16일 죽은 리인모가 송환되기 전부터 폐렴을 앓고 있었고 나이가 많았기에 오랫동안 병석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6년 1월 15일 데일리NK는 리인모로 인해 2002년부터 북한 수형시설의 인권실태가 한때 개선된 적이 있다고 중국에 체류 중인 복수의 탈북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2004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함경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55호 단련대(구 '22호 교화소')에 수감되어 있다 2005년 11월 다시 북한을 탈출한 박철군 씨는“리인모가씨는 “리인모가 북한의 감옥들을 둘러보고‘북조선의둘러보고 ‘북조선의 감옥은 너무 세다, 남조선도 이렇게 험악하지는 않다'고 김정일에게 제기를 했으며, 그 때문에 2002년부터 감옥 사정이 약간 나아졌다"고 2006년 1월 13일 기자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미래한국이 2006년 1월 16일 이를 전재했다.
 
북한으로 송환된 후 리인모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둘러봤으며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제기해 북한 수형시설의 인권실태가 한때 개선됐다는 것이다. 리인모가 북한의 감옥을 둘러보게 된 이유는 본인의 희망에 의해서였으며, 2001년 말 평안남도 평성 교화소와 함경북도 회령 교화소, 평안북도 증산군 11호 단련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정치범 종신 수용소 등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인모의 건의 후에 교화소 내에 구타가 사라지기도 하고 2002년에는 대사면 조치가 내려져 수형자 절반이 출소하기도 했고 "그때 '리인모 만세'를 외친 사람이 있다는 우스개거리가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정보원이 2005년 11월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자료 ‘북한의 인권개선 노력'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003년 9월 인민보안성 및 보위부에 '고문 등 폭력행위를 일체 근절하고 앞으로 법에 따라 주민을 다루라'는 내용의 지침을 하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ref>{{저널 인용
|url=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17&replyAll=&reply_sc_order_by=I#reply
|제목=북송 장기수 이인모가 북한인권개선 위해 노력?
|출판사 = 미래한국(데일리NK 인용)
|날짜=2006.01.16}}</ref>는 것이다. 이 기사에는 문제의 발언 내용은 없지만 리인모의 건의를 받은 북한 당국의 조치는 굉장히 긍정적이다. 이것은 리인모가 교화소 관계자 앞에서 폭탄발언을 한 게 아니라 정식 계통을 밟아서 김정일에게 건의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 건의로 리인모가 불이익을 받은 내용은 보이지나오지 않는다.
 
2008년 5월 6일 도서출판 시대정신이 펴낸 재중 탈북자 리준하의 책 ‘교화소 이야기'<ref>{{저널 인용
|제목=재중 탈북자가 전하는 北 '감옥' 실상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2008.05.27}}</ref> 문제의 발언이 처음 등장하는 이 책은 북한 일반 교화소의 실상을 최초로 밝힌 이 책에는 문제의 발언이 처음 등장한다책이다. 주간조선 기사와 달리 북한 당국이 리인모의 보고를 받고 수형자 대우를 개선한 모습을 싣고담고 있다.
 
2009년 6월 23일 주간조선은 리인모가 선전용 감옥을 둘러본 뒤 “이런 감옥에선 단 1년도 살 수 없다”고 발언한 후 모든 선전활동이 중단된 채 고립돼 외롭게 생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ref>《주간조선》 (2009.6.2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23/2009062300782.html <nowiki>억류 여기자 수감 북한 교화소는 어떤 곳</nowiki>]</ref>고 보도했다. 리준하의 책 ‘교화소 이야기' 내용과 달리 리인모가 문제의 교화소 발언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내용이 처음으로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을 ~알려졌다로 표현하면서 주장의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리인모의 발언 내용 중 3년이 여기서는 1년으로 나온다. 수형시설 개선 건의 내용은 없다.
 
데일리NK의 2009년 10월 7일 기사 "도주자의 말로 어떻게 되는지 똑바로 보라"는 리준하의‘교화소리준하의 이야기’책‘교화소 이야기’ 책 2부 중 '탈주자에 대한 공개총살' 부분(p. 140~146)을 전재한 것이므로것이다. 리인모와 교화소 관련 내용은 책과 같다. <ref>{{저널 인용
|url=https://www.dailynk.com/%eb%8f%84%ec%a3%bc%ec%9e%90%ec%9d%98-%eb%a7%90%eb%a1%9c-%ec%96%b4%eb%96%bb%ea%b2%8c-%eb%90%98%eb%8a%94%ec%a7%80-%eb%98%91%eb%b0%94%eb%a1%9c/
|제목=“도주자의 말로 어떻게 되는지 똑바로 보라”
|제목=이인모는 송환 후에도 金부자에 충성다짐했을까?
|출판사 = 데일리NK
|날짜=2010.03.19}}</ref>는 것이다. 문제의 발언이 등장하지만 건의라는 형식이 없고 리인모가 북한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당했다는 리인모가주장을 담고 서술된다있다. 어디서인가 정보를 인용하면서도 출처도 없고 정보 내용이 확인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의 교화소 발언 이후 전개되는 상황이 기존에 나온 2006년 1월 15일, 2009년 10월 7일 기사와 상반된다. 그것도 2001~2002년 무렵 리인모가 했다는 발언의 결과가 불과 5개월 사이에 정반대로 바뀌었다나타난다.
 
2011년 2월 7일 뉴데일리에는 남한에서 36년 옥살이를 한 비전향좌익수 이인모가 북한에서 로동교화소를 돌아본 뒤“나뒤 “나 같으면 한 달 안에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ref>{{저널 인용
|url=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1/02/07/2011020700102.html
|제목=이곳이 수용소
|출판사 = 뉴데일리
|날짜=2011-02-07}}</ref>는 기사가 실렸다. 역시 출처의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여기는 3년이 아니라 한 달로 나온다. 북한당국의 반응과 리인모의 불이익당하는 내용은 없다.
 
2013년 뉴스파인드는 칼럼에서 리인모가 선전용 [[교화소]]를 둘러보고 나서“나나서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곳에서는 34년이 아니라 3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후 그를 활용한 모든 선전활동이 중단됐고 이후 그는 사회와 고립돼 외롭게 연명하다 2007년 6월 생을 마쳤다는 주장도 있다<ref>《뉴스파인더》 (2013.3.18) [http://www.newsfinder.co.kr/news/article.html?no=18865 북송됐던 리인모, 과연 행복했을까]</ref>고 주장했다. 주장의 근거를 밝히지 않았고 수형시설 개선 건의 내용은 없으며 리인모가 문제의 발언으로 불이익을 받는받았다는 내용이주장을 나온다실었다.
 
2015년 3월 13일 동아일보는 탈북자 김미란의 증언 기사에서 증산교화소에 이인모가 와서 이 교화소에서는 일년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란 말을 한 다음부터 이인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f>{{저널 인용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2015.03.13}}</ref>
고 기록하고 있다. 주장은 근거는 없다. 여기는 3년이 아니라 1년으로 돼 있고 리인모가 북한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2017년 전 조선-체코 신발 합영회사 사장 김태산이 쓴 조선펍 글에는 기존의 자료에는 보이지 않던 내용이 등장한다. 리인모가 교화소 관련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김정일이“역시김정일이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 게 못 돼"라고 화를 냈다는 내용이 나온다것이다. 리인모의 말이 나온 순간부터 30분도 채 되기 전에 노동당과 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3개의 통보선으로 리인모의 교화소 행적과 발언 내용이 김정일에게 직보되었고 이에 대한 김정일의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리인모는 "당과 수령의 신임을 저버린 쓸모없는 고깃덩이" 취급을 받았고 마침내 2007년 6월 누구도 찾지 않는 속에서 고독한 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ref>{{저널 인용
|url=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7&nNewsNumb=20170926000&nidx=26001
|제목=북송된 미전향장기수 이인모가 "쓸모없는 고깃덩이"로 버려진 이유는?
|출판사 = 조선펍
|날짜=2017-09-01}}</ref> 역시 주장의 근거는 없다. 심지어 해당 글 끝에는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라고 되어 있다. 또 여기서는 리인모가 김정일에게 건의했다는건의한 내용이 여기서는아니라 행정계통 등으로 직보받은 김정일이 분노했다고 나온다. 그 때문에 리인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고 외롭게 죽는다고 나온다.
 
==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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