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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모가 북한 당국에 밉보였다고 거론되는 게 교화소, 즉 수형시설에서의 발언 때문이다. 문제의 발언은 2008년 펴낸 리준하의 책 ‘교화소 이야기'에 처음 등장하며 열악한 환경의 교화소에서 "3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나온다. 리인모와 수형시설 관련 내용이 처음 등장하는 2006년 데일리NK 기사와 2008년 나온 리준하의 책 '교화소 이야기'에는 수형시설을 둘러본 리인모가 김정일(또는 중앙당)에게 개선을 건의(또는 보고)했으며 실제로도 수형 여건이 개선되고 수형자 대우가 달라졌다고 나온다.
 
그러나 2009년 주간조선 기사부터는 문제의 교화소 발언으로 리인모가 불이익을 당하는 식의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초창기 기사에 등장하지 않았고 불이익받은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으며 발언 내용도 3년, 1년, 한 달 등 약간씩 다르게 나타난다. 심지어 2017년 조선펍 기사에 이르러서는 리인모의 폭탄발언을 전해들은 김정일이 화를 내었다고 나온다. 김태산은 문제의 발언이 있던 당시 체코에 있었다. 2001년 문제의 발언이 있었고 리인모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면 2002년 이후의 북한 교화소 변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 또 리인모가 2002년 6월엔 금강산에서 남측 딸을 만나고 2003년 9월 24일 자신의 집을 방문한 한완상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송환 당시 통일부총리였던 한완상은 이날 식물인간 상태라는 리인모를 찾아보고 북송 후 10년째 살고 있어 놀랐다고 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2005년 11월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자료 ‘북한의 인권개선 노력'을 통해 밝힌 내용이나 2006년 데일리NK 기사, 2008년 리준하의 책 ‘교화소 이야기'를 봐도 북한 당국이나 김정일이 리인모의 건의에 화났거나 푸대접했다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2007년 6월 16일 죽은 리인모가 송환되기 전부터 폐렴을 앓고 있었고 나이가 많았기에 오랫동안 병석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6년 1월 15일 데일리NK는 리인모로 인해 2002년부터 북한 수형시설의 인권실태가 한때 개선된 적이 있다고 중국에 체류 중인 복수의 탈북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2004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함경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55호 단련대(구 '22호 교화소')에 수감되어 있다 2005년 11월 다시 북한을 탈출한 박철군 씨는 “리인모가 북한의 감옥들을 둘러보고 ‘북조선의 감옥은 너무 세다, 남조선도 이렇게 험악하지는 않다'고 김정일에게 제기를 했으며, 그 때문에 2002년부터 감옥 사정이 약간 나아졌다"고 2006년 1월 13일 기자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미래한국이 2006년 1월 16일 이를 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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