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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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간에 걸쳐 싸운 끝에 일본군은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한국 측은 당시 일본군 전상자를 전사자 1,200명<ref name="han1400"/>, 부상자 3,300여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때 한국인 독립군은 일본군 연대장인 [[가노 노부테루]] 일본군 육군 대령 외에 대대장 2명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한국측 자료도 학자 연구와 자료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나 있으나, 대략 일본군 사상자 1천~3천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측은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1979년과 1985년에 나온 일본의 군사 사학자 사사키의사사키 하루타카(佐々木春隆)의 청산리 전투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일본 제 19사단 사령부의 보고서를 근거로 일본 측에서는 청산리 전투의 일본인 사상자를 전사 11명, 부상 24명으로 파악하였다.<ref>陸軍第十九師團司令部 「間島事件鮮支人死傷者調」 大正十年二月二十五日</ref>
 
이에 대해 한국측은 일본 신문에는 청산리 전투에 의한 보도로 '아군 가노 연대장이 전사하고, 대대장 2명, 중대장 5명, 소대장 9명, 하사 이하 전사자 9백여 명'이라고 보도하였다고 주장한다.<ref name="ghando">심상룡, 《간도는 우리 영토다》 (출판사 의성당, 2004) 340페이지</ref> 이에 따르면 최소 하사관 이하 전사자를 9백명에서 1천 명 정도로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