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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녕군 이비'''(敬寧君 李裶, [[1395년]] [[12월 13일]]<ref>[[1402년]] [[12월 13일]]이라는 일설도설도 있음.</ref> ~ [[1458년]])는 [[조선]]의 [[왕족|왕족 종실]]이며 [[조선 태종|태종]]의 서장자이다. 자(字)는 정숙(正淑)이다.
 
== 생애 ==
조선 제3대 군주인 [[조선 태종|태종]]의 서장자이자 [[효빈 김씨]](孝嬪金氏) 소생이다. 경녕군의 생년에 대해 1395년(태조 4)라고 하기도 하고<ref>[http://www.rfo.co.kr/view_party.php?refnum=042 전주이씨대동종약원 홈페이지 경녕군파 약사]</ref>, 1402년(태종 2)이라고 하기도 한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6417&cid=46622&categoryId=46622 《한국민족문화대백과》〈경녕군〉]</ref>. 다만 훗날 경녕군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왔을 때, 당시 [[영락제]]가 "너의 아비(태종)이 왕이고 형(세종)도 왕이니.."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아, 적어도 영락제는 경녕군을 1397년생인 세종보다 연하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da_10112007_003 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2월 7일 정축 3번째기사]</ref>.
조선 제3대 군주인 [[조선 태종|태종]]의 서장자이자 [[효빈 김씨]](孝嬪金氏) 소생으로 태어날 때 옥상에 백룡이 도사리고 있는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궁중 사람들이 현인(賢人)이 태어날 것을 예견하였다고 한다.
 
경녕군이 태어날 때 옥상에 백룡이 도사리고 있는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궁중 사람들이 현인(賢人)이 태어날 것을 예견하였다고 한다. 또 그가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심과 우애심이 돈독하며 학문에도 밝았다고 전한다. 이복형인 [[양녕대군]]과 이복동생인 [[효령대군]], [[조선 세종|충녕대군]]에게 글을 가르친것이 대표적이다. 아버지 태종에게는 물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5대에 걸쳐 국정에 충실히 협조하였다.
 
[[1419년]](세종 1) 상왕 태종에게 경녕군에게만 명 황제에게 응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평가되어 상왕 태종의 [[사은사]]가 되어 북경으로 향하였다. 이 때 명나라의 황제였던 [[영락제]]에게 기린·사자·복록(福祿)과 [[수현사]]와 [[보탑사]](寶塔寺)의 상서로운 그림 5축(軸) 및 어제 서문(御製序文)이 붙은 《신수성리대전(新修性理大全)》과 《사서오경대전》 및 황금 1백 냥(兩), 백금 5백 냥, 색비단(色段羅)·채색 비단(彩絹) 각 50 필, 생명주(生絹) 5백 필, 말(馬) 12필, 양 5백 마리를 하사받아 돌아왔다.<ref>《[[조선왕조실록]]》 세종 6권, 1419년 12월 7일</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