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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의 노예 씨받이 걸레 유사종족
 
한족, 동남아, 인도, 몽골,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잡종 후손
== 기원 ==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반만년 동안 혈연적 동일성을 지니고 이어진 단일민족임을 강조한다. 한민족은 주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단절된 [[한반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오래 전부터 고유한 언어적ㆍ문화적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민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ref name="한민족">{{서적 인용|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고대국가의 형성과 문화/한국 민족의 유래#한국 민족의 유래〔槪說〕|한국 민족의 유래〔槪說〕]]|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한민족(韓民族)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만족할 정도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민족의 종족적 구성과 문화의 기원이란 문제는 자료 결핍으로 말미암아 문헌 기록만으로는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고, 고고학·인류학·언어학·신화학(神話學) 등 인접과학의 종합적 연구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을 비롯한 이러한 과학을 원용(援用)한 한민족의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시작되었고, 게다가 고고학 외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업적이 적은 편이었다. 한편 일반사가(一般史家)들도 각기 전문분야의 연구 과제가 산적(山積)하여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적었던 듯하다. 그런 중에도 근년(近年)에는 고고학·인류학 등에 대한 연구에 진전을 보고 있으며, 또 이들의 연구 성과와 문헌연구의 성과를 종합하는 경향이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결과가 기대되는 것이다.}}</ref>
 
[[고조선]]과 동일한 시기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진국]](辰國)이라 불리는 나라가 있었는데, 고조선이 진국과 한나라 사이의 교류를 방해하였다. 즉 고조선 당시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를 차지하고 있던 [[고조선]]과는 구분되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고 양측의 구성원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같은 민족으로서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문헌 등의 사료 부족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들의 후신인 [[부여]], [[동예]], [[옥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고조선]]과 [[진국]]의 구성원들 역시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등과 같이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多民族) 국가와 달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민족이 전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이다. 민족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지닌 집단이기 때문에 여러 민족도 하나의 민족 집단으로 융화된다. 예를 들어 거란 전쟁에서 거란인들을 노예로 끌고 오기도 하였다. 오늘날 동일한 언어와 문화, 공동체 의식을 지닌 한민족으로 융화되었다. 곧 한민족 집단이 언제나 지배적 지위에 있으면서 여기에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한민족화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ref>{{서적 인용|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고대국가의 형성과 문화/한국 민족의 유래#한국 민족의 유래〔槪說〕|한국 민족의 유래〔槪說〕]]|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한민족은 보통 단일민족이라 한다. 그러나 학문상으로 엄밀히 말하면 단일인종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 그 중에는 비록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수개(數個) 이상의 다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하겠다. 즉 한인(韓人)·몽골인·만주인(滿洲人)·왜인(倭人) 기타 남방 폴리네시아 계통 등의 요소가 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여 혼잡다이(混雜多異)한 복합체라고는 할 수 없으며, 한민족으로서의 주(主)된 기본적 요소는 언제나 지배적 지위를 가지면서 여기에 다른 요소가 가미된 것이라 할 것이다.}}</ref>
 
한반도인들은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로 발전되어 나아갔다 [[공주 석장리 유적|충청남도 공주 석장리(石壯里)]]의 유적은 대표적인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潼關鎭)과 굴포리(屈浦里)·부포리, [[충청남도]]의 [[공주시|공주]] 석장리(石壯里)로 이외에도 연천 전곡리, 평안도의 검은모루 동굴 등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며 이곳에서 전기·중기·후기의 고대 한반도인들이 거쳐 간 흔적이 보인다. 이 유적의 4·5층의 것은 15만 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로 그 위층의 중기 구석기 문화는 4만~1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또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 속하는 상층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따라 30,69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석기 문화가 상당한 기간 이어지고 구석기가 발전하여 신석기 문화를 가진 빗살무늬 토기가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ref>{{서적 인용|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고대국가의 형성과 문화/한국 민족의 유래#한국 민족의 유래〔槪說〕|한국 민족의 유래〔槪說〕]]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 즉 한인(韓人)·몽골인·만주인(滿洲人)·왜인(倭人) 기타 남방 폴리네시아 계통 등의 요소가 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여 혼잡다이(混雜多異)한 복합체라고는 할 수 없으며, 한민족으로서의 주(主)된 기본적 요소는 언제나 지배적 지위를 가지면서 여기에 다른 요소가 가미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한민족을 다른 민족에 비해 순수한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는 점일 것이다. 한민족의 근간(根幹)은 몽골족·만주족·터키족(土耳其族), 즉 ‘우랄 알타이어(語)’ 계통족(系統族)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共同祖上)에서 분파(分派)된 일족(一族)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이 문헌상으로 한(韓)이나 예맥(濊貊)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믿어진다..}}</ref>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발전하여 이른 민무늬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기하문토기 등으로 발전된다.한민족의 근간(根幹)은 몽골족·만주족·터키족(土耳其族), 즉 ‘우랄 알타이어(語)’ 계통족(系統族)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共同祖上)에서 분파(分派)된 일족(一族)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이 문헌상으로 한(韓)이나 예맥(濊貊)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들은 중국 북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선주민(先住民)들을 구축하면서 동으로 이동하여 왔던 것 같다.여기에서의 선주민이란 구석기 시대인과 즐문토기 문화인(櫛文土器文化人)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潼關鎭)과 굴포리(屈浦里)·부포리, 충청남도의 공주 석장리(石壯里) 등지에 불과하나 앞으로 한강과 낙동강 및 수원·안성 등지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라고 최근에 논의되는바 이곳에는 전기·중기·후기의 선주민들이 거쳐간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되고 있다.
 
신석기 문화는 한국의 경우 약 1만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1500년쯤에 청동기 시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빗살무늬 토기 문화이다. 적어도 기원전 10세기 전부터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살기 시작한 예맥은 북방적 요소가 강한 청동기 문화를 수용하면서 각처에서 부족 국가를 건설하였다.
 
=== 민족 형성 ===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의식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가에 대하여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크게는 근대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전근대형성설과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 과정과 더불어 형성되었다는 근대형성설로 나뉘는데, 전근대형성설은 다시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발해 유민까지 통합한 고려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과 조선의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등으로 나뉜다.
 
삼국 시대에는 각국의 주민 간 교류가 있었으나 한 집단으로서의 민족의식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신라 정부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그래도 여전히 민중 사이에는 삼국 각국의 국민이라는 의식이 퍼져 있었으나 고려 건국 이후 비로소 공통된 민족의식이 확립되었다는 학설이 정설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ref>{{잡지 인용 |저자=노태돈 |날짜=1997 |제목=한국민족형성시기론 |잡지=한국사 시민강좌 |호=20 |페이지=179-180 |위치=서울 |출판사=일조각 }}</ref>
 
== 인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