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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대구 오성중고 졸업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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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오성 중학교 진학을 위해 대구로 이사. [[한국 전쟁|6.25 전쟁]]으로 전국의 피난민이 [[대구광역시|대구]]로 모여들자 임시로 지은 판자집이 많았고 전쟁이 끝나자 수용소 빈집이 많아 칠성동에 있는 북문수용소란 판자촌에 쉽게 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국수단지를 이고 [[대구역]] 뒤편 하역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주로하여 국수장사를 했고 여동생은 방직공장에 나가서 일해야했다. 이원좌 화백도 낮에는 우산공장에 나가 일을 했고 야간학교를 다녀야 했을만큼 이 시절의 삶은 궁핍했다.
1967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후 서울시내에서만 근무하는 공립학교 시험에 합격해 12년간 미술교사로 재직(광희, 연서, 관악고등학교 미술교사)하며 휴일이나 방학때면 전국 각지의 강산으로 여행하며 수묵산수화를 그렸다. 이후 그림에 집중하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며 본격적으로 산수화에 매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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