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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 ====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곧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과 이북의 정치일꾼들은 이른바 ‘모시기 공작’을 통해 김규식 등 남북협상에 참여한 인사들과 출옥인사들을 북으로 데려가는 작업을 서둘렀다. 대부분의 임시정부 요인들과는 달리 미군정에 참여해 통위부장으로 한국군 창설의 산파역을 했던 류동렬 장군도 당연히 모시기 공작의 대상이었다. <ref>{{저널 인용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어 [[1950년]] [[10월 18일]] [[평안북도]] [[희천시|희천]]의 어느 농가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납북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낸 [[류미영]]이 류동열의 딸이다. 외무장관을 지내고 월북한 [[최덕신]]이 사위이며 독립운동가 [[최동오]]가 사돈이다.
|url=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45.html
|제목=기구한 참으로 기구한…
|출판사 = 한겨레21
|날짜=2000-08-23}}</ref>
[[1950년]] 대한민국에서는 [[한국납북된 전쟁]]이것으로 일어난기록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남쪽이 ‘납북’으로 부르는 납북되어북쪽의 ‘모시기 공작’으로 류동열은 북으로 가게 됐다. 당시 72세 고령이던 류동열은 [[1950년]] [[10월 18일]] [[평안북도]] [[희천시|희천]]의 어느 농가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납북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낸 [[류미영]]이 류동열의 딸이다. 외무장관을 지내고 월북한 [[최덕신]]이 사위이며 독립운동가 [[최동오]]가 사돈이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