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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19-02-17}}</ref>
 
최덕신은 원래 철저한 반북반공인사였다. 그러나 미국 체류 중 6.25 때 납북된 부친의 묘소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방북한 그는 애국열사릉에 잘 모셔져 있는 부친 최동오의 묘를 보고 마음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최동오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 운동가였다.

최덕신의 맏아들 최건국이 사망 전에 밝힌 최덕신의 북한행 이유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나 미국에 나가 살면서 김일성 주석의 통일토론 제의를 수락해 76년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아버지는 2년 뒤인 78년 다시 북한을 방문했으며 그 뒤부터는 거의 매년 방북하면서 김 주석을 만났고 북한 체제를 목격하게 된 것 같다. 직접적인 계기는 김주석의 '인력(引力)' 때문이었다고 본다." <ref>{{저널 인용
|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15615
|제목=최덕신씨 북한행의 '정설'?
|출판사 = 오마이뉴스
|날짜=2000.09.20}}</ref> 최덕신의 맏아들 최건국이 사망 전에 밝힌 최덕신의 북한행 이유다.
 
북한 당국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그는 [[1986년]] [[4월]] 아내 [[류미영]]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ref>1986년 4월~: 《조선일보》 (2001.1.27.) [http://nk.chosun.com/news/news.html?ACT=detail&res_id=4469&page=3123 류미영씨 평양서 사돈 상봉 불발]</ref> 그해 9월 북한 영주권을 취득했다. 86년 9월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에 영구 귀국하겠다고 발표했다. 차남 인국씨를 포함 당시 성인이었던 자녀 다섯은 남한에 놔둔 채였다.<ref>{{저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