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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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은 오늘날 [[이란]]의 영토에 근거한 여러 개의 제국을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를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넓은 의미로는 [[1979년]]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여러 개의 제국들을 모두 페르시아 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본래 남부 [[이란]]의 한 주(州)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는데 그 곳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가 있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왕조를 그 지역 이름으로 불렀으며, 오늘날의 유럽 언어도 그것을 따랐다. 그래서 영어를 비롯한 유럽 어에서는 이 나라를 페르시아라 통칭했다.
 
== 역사 ==
=== 메디아(기원전 728년 - 기원전 550년) ===
{{본문|메디아}}
 
[[파일:Median_Empire.jpg|400px]]
 
===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
{{본문|아케메네스 왕조}}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은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한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로니아 제국]]을 물리침으로써 최고로 강한 나라에 이르게 된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에 키루스 원통이라는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1879년]]에 발견되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시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 수 있으며 노예제를 금지하며 궁궐을 짓는 모든 일꾼은 급여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키루스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병합한다. 제국의 영토는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 최고의 영토가 된다. 아케메네스의 영토는 인더스강에서부터 유럽에 이르렀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중국을 제외한 그 당시 알려진 대부분의 문명세계를 통일하였다.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 때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가 격돌하는데 이를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으로 부른다. 잘 알려진 아테네의 [[마라톤 전투]]와 스파르타 300명이 나라를 지켜냈던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은 아케메네스 제국과의 전쟁이야기이다.
 
[[파일:Achaemenid_Empire.jpg|400px]]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기원전 330년 – 기원전 250년) ===
[[파일:Map-alexander-empire.png|400px]]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르고 아케메니아 제국의 영토를 그대로 이어 받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쉽게 큰 땅을 복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케메니아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제는 자신들을 페르시아의 계승자로 부르면서 다리우스 3세에게 장엄한 장례식을 해주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딸 스타데이라와 결혼하였다.
 
=== 파르티아(기원전 250년 – 226년) ===
{{본문|파르티아}}
 
[[파일:LocationParthia.PNG|400px]]
 
=== 사산 왕조(226년 – 651년) ===
{{본문|사산 왕조}}
사산제국은 로마제국과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유지하여 서로 뺏고 뺏기는 영토 전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훗날 [[비잔티움 제국]]에게 크게 패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이슬람 제국에 의하여 사산제국은 멸망의 길로 가게된다. 사산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야즈데게르드 3세]]가 이슬람 제국에게 패하여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파일:Sassanid_Empire_620.png|400px]]
 
=== 이슬람 제국(650년 – 1037년) ===
{{병합 필요 문단|이란의 역사}}
이슬람 제국은 그때까지 있었던 가장 큰 나라를 만들게 되는데 지금의 스페인 땅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의 인더스 강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파일:Age_of_Caliphs.png|400px]]
 
=== 셀주크 제국(1037년 – 1194년) ===
{{병합 필요 문단|이란의 역사}}
{{본문|셀주크 제국}}
북동쪽에 있던 셀주크 투르크족이 침공하여 이슬람 제국은 흔들리게 된다. 이 투르크 족은 셀주크 제국을 만들게 된다. 1194년 셀주크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 죽은 이후 25년간은 공백기로 남아있게 된다.
 
[[파일:Seljuk Empire locator map.svg|400px|셀주크 투르크의 최대 판도 1092]]
 
=== 몽골 제국 점령 시대(1219년 – 1478년) ===
{{병합 필요 문단|이란의 역사}}
{{본문|몽골 제국}}
 
=== 사파비 왕조(1507년 – 1722년) ===
{{병합 필요 문단|이란의 역사}}
{{본문|사파비 왕조}}
사파비 왕조는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하며 점차 성장해 가다가 오스만투르크의 팽창으로 인해 더 이상 확장하지 못했다.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교를 종교로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큰 시아파의 나라가 되며 오늘날 이란의 시아파로 이어지고 있다.
 
[[파일:LocationSafavid.PNG‎ |400px]]
 
=== 분열 기간 ===
{{병합 필요 문단|이란의 역사}}
==== 호타키 길자이 왕조(Hotaki Ghilzai dynasty: 1722년 – 1729년) ====
{{빈 문단}}
 
==== 아프샤르 왕조(1736년 – 1796년) ====
아프샤르 왕조는 [[나디르 샤]]가 시작한 [[왕조]]이다. 그 이름은 그가 속하고 있던 [[투르크]]계 아프샤르 족에 유래한다. 나디르 샤가 죽은 후 [[호라산]] 지방에 모여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796년]]에 [[카자르 왕조]]의 공격을 받아 4대로서 멸망했다.
 
==== 잔드 왕조(Zand dynasty: 1750년 – 1794년) ====
[[아프샤르 왕조]]의 [[나디르 샤]]가 암살된 후 잔드 부족의 [[카림 칸]]은 여러 지방에 할거하는 군웅을 제거하고 이란 전토를 통일하였다. 그는 선정을 베풀고 [[수도]]의 미화(美化)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1779), 동족 중에 왕위 쟁탈전이 격화되자 [[1794년]] [[카자르 왕조]]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1781년 – 1925년) ===
{{본문|카자르 왕조}}
카자르 왕조는 [[투르크]]계 카자르 족의 [[아가 모하마드]]가 [[잔드 왕조]]의 [[카림 칸]]이 죽은 후 독립하여 창건한 [[왕조]]이다. [[테헤란]]에 [[수도]]를 두었다.
 
왕조 초기에는 [[러시아]]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국위(國威)를 해외에 떨쳤으나 러시아와의 두 번째 싸움에 패하여 치외법권을 인정하고([[투르크만차이 조약]]:[[1828년]]), 이것이 열강들에게도 적용되어 [[이란]]의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하여 [[바브교]](敎)나 [[아프가니]]에 의한 민족 해방 운동이 일어나, [[1906년]]에는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다. [[영국]]·러시아의 식민주의 팽창이 계속되어 동남부를 영국이, 북부를 러시아가 장악하였다. [[1912년]]에는 정식으로 영국·러시아의 이란 분할 협정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반(半)식민지화 되었다. 그 후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혼란을 수습할 수가 없어 [[1925년]] 국민 의회에 의해서 폐위되었다.
 
[[파일:Map_Iran_1900-en.png|400px]]
 
=== 팔레비 왕조(Pahlavi dynasty: 1925년 – 1979년) ===
{{병합 필요 문단|이란의 역사}}
{{본문|팔레비 왕조}}
팔레비 왕조는 팔레비가 건국하여 이란의 이권을 회수하여 근대화 운동을 펼쳤지만 팔레비 왕조의 왕실은 지나친 사치와 친서방의 진보적인 나라였다. 이것을 반대한 이슬람계 보수파는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란·이슬람혁명을 일으켰는데 그 결과 팔레비 왕조가 멸망하고 신정제가 확립되었다.
 
[[분류:이란의 역사]]
[[분류:아시아의 옛 나라]]
[[분류:페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