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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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유엔군총사령관의 임명을 받아 휴전회담에 참가했으며 1956년 4월부터 베트남 대사를 지내는 중에 5.16을 맞이한다. 육사 교장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르친 인연으로 5.16 직후 [[외무부 장관]]을 했고 1963년 8월 9일, [[한독 관계|서독주재 대사]]로 임명되었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308070032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3-08-07&officeId=00032&pageNo=1&printNo=5472&publishType=00020| 제목 = 瑞典大使에- 劉載興씨任命 | 날짜 = 1963-08-07 | 출판사 = 경향신문 |인용문 =西獨大使에는 崔德新前外務部長官이 決定되어 있다. )}}</ref><ref>{{뉴스 인용 |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308100020920102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3-08-10&officeId=00020&pageNo=1&printNo=12857&publishType=00020 |제목=주서독대사에 최덕신씨 발령 |출판사= 동아일보|날짜= 1963-08-10|쪽=1 }}</ref> 서독 대사 이후 67년부터 천도교 교령으로 활동했다. 또 통일원 고문, 주 [[베트남]] 공사, 한중일보 사장([[1972년]]) 등을 지냈다.<ref>약력: 외교통상부 [http://www.mofat.go.kr/mofat/mk_a007/mk_b041/mk_c90/1172562_27881.html 제9대 외무부장관 최덕신 프로필]{{깨진 링크|url=http://www.mofat.go.kr/mofat/mk_a007/mk_b041/mk_c90/1172562_27881.html }}</ref>
 
와무장관외무장관 시절, 독립운동가 차리석의 아내 홍매영과 아들 차영조를 챙긴 일화는일화도 유명하다있다. 독립운동 하던 임정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광복 직후 차리석이 사망하고 충남 부여에서 힘들게 살던 홍매영, 차영조 모자는 최덕신을 만나 외무부 장관 공관의 부속실에 들어가 생활했다. 최덕신은 차영조를 2년제 야간 고등공민학교에 넣어주었고 졸업하자 상업고등학교에 편입시켜주었다. 장관 퇴임 후 사저로 돌아갈 때도 차영조 모자와 함께했다. 최덕신의 어머니뿐 아니라 부인 류미영도 이들 모자를 잘 챙겨주었다. 최덕신이 서독대사로 간 후에도 모자는 최덕신의 자택에서 지냈다.<ref>{{저널 인용
|url=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201
|제목=“독립운동 집안 숨기려 성을 바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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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통령은 왜 천도교를 적극 도왔을까
|출판사 = 데일리안
|날짜=2009-03-03}}</ref>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14750
|제목=[한국의 창종자들]남북 분단 후 교세 급격히 하락
|출판사 =주간경향
|날짜=2008.08.07}}</ref>
최덕신은 반북반공인사로 분류되었으나 미국 체류 중 6.25 때 납북된 부친의 묘소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방북한 그는 애국열사릉에 잘 모셔져 있는 부친 최동오의 묘를 보고 마음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최동오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 운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