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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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천도교는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한때 교세를 되살리는 전기를 잡았다. 천도교 교령 재임 기간(1967년 4월 4일~1975년 4월 6일, 11~15대 교령 역임) 최덕신은 대외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답게 수운회관을 건립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유정회, 수협중앙회가 건물에 입주하는 등 외형적 성과는 볼 만했지만, 세력 과시에 치중하거나 천도교와 관련 없는 군시절의 부하를 데려오는 등 최고 지도자로서의 신앙적 책무를 외면한 독선과 전횡으로 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다고 한다. 천도교는 1920년대 최대의 종교였다. 1926년 7월 10일자 동아일보는 조선 종교현황 중에 천도교인 수를 200만 명으로 보도하고 있다. 같은 기사에 기록된 기독교 35만 명, 불교 20여만 명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다.
1968년 교인 100만명을 자랑했던 교세가 2009년 현재 10만명이 안되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천도교의 약세화에는 전 교령 최덕신과 오익제의 월북이 결정적으로천도교가 영향을위축되는 미쳤다는중요한 것이계기가 중론이다되었다. <ref>{{저널 인용
|url=http://www.dailian.co.kr/news/view/148228/?pcv=1
|제목=대통령은 왜 천도교를 적극 도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