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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4년]](중종 39) 11월 [[조선 중종|중종]]이 승하하고, [[1545년]](인종 원년) 여름 4월 중국의 사신 장승헌(張承憲)이 와서 국상을 조문하였는데 조정에서 그를 제술관(製述官)으로 부름에 나아갔다.
 
당시 그가 가르치던 세자새로 [[조선 인종|인종]]이 새로왕위에 즉위하여,즉위하자 조정에서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를 기약하여기약하며 전국의 선비를 모으니, 모두 그에게 [[조선 인종|인종]]의 경연의경연 보도 책임을 맡기고자 하였다. [[조선 인종|인종]]도 첫 정사로 [[성리학]] 숭상과 [[현량과]]를 복원하고, [[기묘년]]에 희생된 선비들인 [[조광조]]ㆍ[[김정]]ㆍ[[기준]] 등의 신원도신원을 복원하였다.
 
그 사이 [[조선 인종|인종]]이 건강을 갑자기 잃자 그는 의약에 함께 참여하기를 청한 바,약원에서 직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그는 세상의 기미(幾微)가 반 사림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부모 병환을 들어 본래의 임소로 돌아왔다.
 
=== 사직과 은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