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의 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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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한편 에센족은 명군의 수급로를보급로를 차단하고 연승하였으나 환관 왕진은 이 와중에도 신하들의 충고를 무시하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피살당하였으며, 결국 에센군은 토목보를[[토목보]]를 포위하여 명나라 황제 영종을 잡아갔다. 중국 역사상 외적과의 전쟁 중 황제가 포로로 잡혀 간 것은 북송 시대 [[정강의 변으로변]]으로 잡혀간 송 황제 흠종과[[송 흠종|흠종]]과 [[휘종]]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을 토목의 변이라고 한다.
 
황제를 포로로 잡아간 에센측은 22만 명군이 집결하고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판단이 서자, 명과의 교섭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북경 조정은 영종의 이복동생인 주기옥(朱祁鈺)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니 대종 [[경태제]](代宗 景泰帝)이다. 그래서 별 효과가 없었다. 에센은 북경 전투에서 에센의 최측근 지휘관인 소로, 마오나하이가 전사하고 군사력에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자 귀국을 서둘렀고 포로로 잡은 영종이 협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자 아무런 조건 없이 1450년에 명나라 조정에 송환했다. 하지만 이미 이복동생인 대종이 즉위하여 황제가 되었으므로 영종은 태상황(太上皇)이 되었으나 궁에 유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