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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군은 [[흥선대원군]]이 되어 고종을 배후에서 조종, 붕당의 근원인 서원을 철폐하고 외척 가문인 안동 김씨 세력들을 손쉽게 축출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통상 강요와 협박에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응수했다. 그러다 1873년 [[최익현]] 흥선대원군을 탄핵하여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는데, 실은 여전히 꼭두각시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다만 그 조종자가 흥선군이 아니라 부인 [[명성황후|민비]]였을 뿐이다.
 
민비는 민씨 일가를 국가 요직에 대거 임명하여 조정을 휘어잡은 뒤, 국가의 문을 활짝 열었다. 당시 조선은 물밀듯이 들어오는 서양 사상, 문물, 이양선의 홍수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며 러시아와 교류룰 시도하다 인간말종 이하의 일본군에게 시해를 당한다. 그때 20명 넘는 한국인 친일파들도 일본군과 동참했다. 조선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일제]], 청나라, 서양 열강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1882년에는 구식 군인들이 [[별기군]]과의 차별대우에 반발하여 들고 일어났고([[임오군란]]), 1884년에는 [[김옥균]] 등이 주도하여 개화정권을 수립했다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갑신정변]]). 1894년에는 농민 수탈에 저항하여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한때 농민 자치를 실현했고, 이어서는 친일 성향이 짙은 [[갑오개혁]]이 발표되었다. 1895년에 일제가 친러파 민비를 암살하자([[을미사변]])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몰래 [[아관파천]]을 감행하여 러시아 주한 공사관에 1년 동안 피신했다. 1897년 11월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이 경운궁의 편액을 [[덕수궁]]으로 고쳐 쓰고, 원구단과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함으로써 조선왕조 500년은 막을 내린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 국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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