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 감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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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에는 [[위조]], [[사기 (법률)|사기]], [[횡령]]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과 [[개신교|개신교도]]와 같은 [[종교]]적인 이유로 투옥된 사람들, 그리고 금지된 서적을 저술하거나 [[출판]]한 사람들이 수감되었다. 바스티유에는 평소 대략 50여명의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으며, 근방의 교도소 중 가장 불결한 환경으로 유명하였다. 바스티유에 수감된 사람들은 대부분 사악한 자라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이었다.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군중들은 불길한 소문에 휩싸여 폭동을 일으켰고 총으로 무장한 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흔히 잘못 아는 상식과는 달리, 습격 당시 바스티유에는 7명의 죄를 지은 자들만이 있을 뿐이었고 [[양심수]]는 없었다. 습격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교도소 주둔군의 지휘자였던 베르나르-레네 드 뢰네({{llang|fr|Bernard-René de Launay}})는 대부분 늙고 병약했던 휘하의 부하 80여 명과 함께 1천여 명의 무장한 군중을 상대로 저항하였으나, 결국 바스티유는 함락되었고 뢰네는 살해당하였다.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한 시민 들은 [[베르나르-레네 드 뢰네]]와 [[파리(도시)|파리]] 시장인 [[플레제이유]]의 머리를 창에 꽂고 파리 시내를 누비는 잔인한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바스티유 습격은 정부군과 민중간의 시가전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발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