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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오타를 고침
7년 뒤 성인이 된 성왕에게 정권을 돌려주고 제후의 지위로 돌아간 후, 문공은 지금의 [[낙양]]인 낙읍(雒邑)에 자리를 잡고 주의 부도(副都)를 세웠다.
 
또한 문공은 예학의예악의 기초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팔괘의 효(爻)를 창안하여 [[역경]]을 완성했으며 주의 의식과 의례를 정리해 《[[주례]](周禮)》와 《의례(儀禮)》을 저술했으며, 문공의 시대에서 약 500년이 지난 [[춘추 시대]]의 인물로 [[유학]]을 정립한 [[공자]](孔子)는 노의 수도였던 곡부 출신으로서 문공을 이상적인 성인으로서 꿈에서도 그를 보고 싶어할 정도로 경모하여, "오랫동안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했다(吾不復夢見周公)"고 말하며 "나도 이제 늙어버렸다"고 탄식했다([[논어]] 술이편)고 한다. 현대의 학자들은 주역이 [[기원전 403년]] 이후 사이에 체제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고 주례를 익명의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주공(周公)이라는 칭호는 문공 자신이 주의 옛 땅이었던 기산(岐山)에 봉해진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무왕이 사망한 뒤 문공은 실제로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가 뒤에 조카 성왕에게 왕위를 돌려주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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