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쇼하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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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
[[무사시노미술대학]] 조형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모교에서학교에 남아 조교로 일하던 중 [[일본미술가연맹]] 전형으로 [[유네스코]] 산하 [[국제조형예술협회]]가 주최하는 제1회 [[파리 세계청년화가대회]]에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1961년 참가하게 된다. 파리 세계청년화가 대회 기간 중 한국 대표인 [[박서보]]와 베트남 대표인 [[타이바번]]과 가까이 교류했다.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동안 제2회 [[파리 비엔날레]]에 초대되어 출품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 남아 1962~1963년에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 벽화과에서 다시 유화를 배웠고, 1965년 제4회 파리비엔날레에는 프랑스 대표로 출품해 참가했다. 1965~1967년에는 같은 학교 석판화과에서 수학했으나, 수료 직후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서둘러 일본으로 귀국했다.
 
1968년부터 모교인 무사시노미술대학에 출강했고, 1982년 동대학 [[유화]]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작품 활동 외에도 [[신일본조형공사]](新日本造形株式会社)에 다목적 판화용 프레스기의 제작 방안을 건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시미즈 쇼하치가 건의한 다목적 판화용 프레스기는 1984년에 제작·발매되었으며 해외에도 수출되었다. 무사시노미술대학 학생들은 이 프레스기를 ‘쇼하치 프레스기’라는 애칭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