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붕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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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가을 들어서 소련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8월에서 12월 사이 10개 공화국이 또 다른 쿠데타의 공포로 독립을 선언했다. 9월 말이 되면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 외엔 영향력이 닿질 않았다. 여기에 크렘린을 포함한 소련 정부의 잔재들을 인수하기 시작한 옐친과도 충돌을 빚었다.
 
9월 12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709호|제709호]],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710호|제710호]],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711호|제711호]]가 투표없이 통과되고 9월 17일에 [[유엔 총회 결의]] 46/4, 46/5, 46/6이 통과되면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유엔]]에 가입했다.<ref>{{웹 인용 |url = https://www.un.org/en/sc/documents/resolutions/1991.shtml |제목 = Resolutions adopted by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in 1991 |출판사 = 유엔 |날짜 = 1991년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ref>{{웹 인용 |url = http://research.un.org/en/docs/ga/quick/regular/46 |제목 = 46th Session (1991–1992) – General Assembly – Quick Links – Research Guides at United Nations Dag Hammarskjöld Library |출판사 = 유엔 |날짜 = 1991년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11월 7일 들어선 거의 대부분의 언론에서 소련을 언급할 때 '구 소련'이라 언급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 Serge Schmemann |제목 = Pre-1917 Ghosts Haunt a Bolshevik Holiday |url = http://www.nytimes.com/1991/11/07/world/pre-1917-ghosts-haunt-a-bolshevik-holiday.html?pagewanted=all |출판사 = 뉴욕 타임스 |날짜 = 1991년 11월 7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소련 붕괴의 최종장은 1991년 12월 1일 열린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투표|우크라이나 독립 투표]]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0300209204001 |제목 = 우크라이나共 獨立 확정 各國 지지 잇달아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이 투표에서 90%가 독립에 찬성했다.<ref>{{서적 인용|url = https://books.google.co.kr/books?id=F_QMCypjpXwC&pg=PA128&redir_esc=y#v=onepage&q&f=false |제목 = Ukrainian Nationalism in the 1990s: A Minority Faith |저자 = Andrew Wilson |출판사 = Cambridge University Press |쪽 = 128 |날짜 = 1997년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 |isbn = 0521574579}}</ref> 경제력과 정치력 면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2위의 세력을 가지던 우크라이나가 탈퇴함으로써 소련을 제한된 규모로라도 유지하고자 했던 고르바초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0200209205001 |제목 = 蘇연방 붕괴 신호탄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3개 공화국 지도자들은 연방을 대체할 대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0400289103001 |제목 = '무너진 소련' 어디로 갈까 연방유지 '고르비 최후의 꿈'도 물거품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4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12월 8일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3개 공화국의 정상이 벨라루스 서부의 [[비아워비에자 숲]]에서 비밀리에 만나 소련은 여러 이유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선언하고 이를 [[독립국가연합]](CIS)가 이어받았다고 합의한 [[벨라베자 조약]]에 서명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000329101001 |제목 = 蘇연방 소멸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1년 12월 10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또한 다른 공화국들도 CIS에 가입하라고 초청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를 또 다른 쿠데타라고 하며 비판하였다비난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000209201001 |제목 = 고르비"「독립聯邦」은 不法"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0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하지만 조약 전문에 나와 있는, "소련은 [[국제법]] 및 지정학적 현실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선 사실상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000209204003 |제목 = 蘇 혼란확산 世界가 우려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0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12월 12일엔 [[러시아 최고 소비에트|러시아 SFSR 최고 소비에트]]가 벨라베자 조약을 공식적으로 비준하였고 [[1922년 연방 조약]]을 폐기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300209206006 |제목 = 러共의회「독립국연방」비준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0일}}</ref> 또한 러시아 대표단이 [[소련 최고 소비에트]]에서 각 공화국으로 소환되어 떠났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300209206006 |제목 = 蘇연방 최고회의 해체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4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소련법에선 공화국이 대표단을 일방적으로 송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행동에 대한 적법성엔 논란이 있었다.<ref>법적으로는 러시아 SFSR의 [[s:ru:Конституция РСФСР 1978 года (в редакции 1 ноября 1991 года)#Глава 7. РСФСР - союзная республика в составе СССР|헌법 제69조]] 및 [[s:ru:Конституция СССР (1977)/редакция 26 декабря 1990 года#Глава 8. СССР — союзное государство|헌법 제72조]]에 따라 "소련에서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나 1990년 4월 3일 개정된 소련 연방법 [[s:ru:Закон о выходе союзной республики из СССР|1409-I]] 및 1990년 4월 26일 제정된 [http://iv.garant.ru/SESSION/PILOT/loadfavorite.html?pid=6335703&page=1&para_id=2147483649 1457-I]{{깨진 링크|url=http://iv.garant.ru/SESSION/PILOT/loadfavorite.html?pid=6335703&page=1&para_id=2147483649 }}에 따라 국민투표에서 등록된 유권자 전체의 3분의 2가 동의해야지만 탈퇴가 가능했다. 하지만 러시아 SFSR은 소련 탈퇴에 대한 특별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았다.</ref> 하지만 이에 대해 러시아 측, 크레믈린 측 어느 쪽도 반대하진 않았다. 만약 소련 연방정부가 반대했다 쳐도, 12월도 채 되지 않아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에 반대가 어떤 의미도 없었을 것이었다. 이에 형식상으로는 소련에서 가장 큰 공화국이 탈퇴한 것으로 보였으나 러시아 측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탈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같은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300289106011 |제목 = 독립국 공동체 성립 의미와 전망 연방재편 해체로 낙착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1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이날 늦게 고르바초프는 처음으로 사임하겠다는 암시를 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s://www.nytimes.com/1991/12/13/world/soviet-disarry-gorbachev-is-ready-to-resign-as-post-soviet-plan-advances.html |제목 = Gorbachev is Ready to Resign as Post-Soviet Plan Advances |저자 = Francis X. Clines |출판사 = 뉴욕 타임스 |날짜 = 1991년 12월 1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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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유럽 경제 공동체]]를 위시한 28개 유럽 국가와 4개 비유럽 국가, 발트 3국, 소련의 12개 공화국 중 9개 공화국 정상이 모여 [[헤이그]]에서 [[에너지 헌장 조약|유럽 에너지 헌장]]을 체결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encharter.org/fileadmin/user_upload/document/EN.pdf#page=211 |제목 = Concluding document of The Hague Conference on the European Energy Charter 출판사 = Energy Charter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24073327/http://www.encharter.org/fileadmin/user_upload/document/EN.pdf#page=211 |보존날짜 = 2013년 10월 24일}}</ref>
 
벨라베자 조약이 소련을 합법적으로 해산시켰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12월 21일 소련의 12개 공화국 중 [[조지아 (국가)|조지아]]를 제외한 11개 공화국 정상이 모여 소련 해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독립국가연합의 창설을 발표한 [[알마아타 조약]]에 서명하면서 소련의 해체는 확실해졌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200209201001 |제목 = 蘇「독립국가 연방」11개共 협정 체결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이 조약엔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승인'한다는 내용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200289101001 |제목 = 소 연방 공식 소멸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고르바초프는 이 때까지도이때까지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으나 이전에 독립국가연합이 실제로 수립되면 즉각 사임할 것이라 말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s://www.nytimes.com/1991/12/22/world/end-soviet-union-11-soviet-states-form-commonwealth-without-clearly-defining-its.html |제목 = 11 Soviet States Form Commonwealth Without Clearly Defining Its Powers |저자 = Francis X. Clines |출판사 = 뉴욕 타임스 |날짜 = 1991년 12월 22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12월 25일 저녁 7시, 고르바초프는 전국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대통령직으로써의 활동을 중지한다"라고 말하면서 대통령직 사임을 밝혔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600209204007&officeId=00020 |제목 = "가야 한다면 이제 갈 시간"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6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또한 고르바초프는 연방내각을 해체시키고 핵무기 권한을 포함한 권력 거의 대부분을 옐친에게 양도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600329104001&officeId=00032 |제목 = 옐친時代가 열렸다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6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그보다 7일 전인 12월 17일엔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만나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는 "기정사실"임을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1800209201003 |제목 = 蘇연방 年末 공식해체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18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같은 날 러시아 SFSR 최고 소비에트는 러시아의 법적 국명을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서 "러시아 연방"으로 바꾸어 주권국임을 보여주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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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모스크바 시각 오후 7시 32분, 고르바초프가 크렘린을 떠난 후 마지막으로 [[소련의 국기]]가 내려갔으며 오후 11시 40분 그 자리에 [[러시아의 국기|러시아 삼색기]]가 계양되면서 상징적으로 소련의 상징이 사라졌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10100329110003 |제목 = 국제정세 러共 자리매김이 新질서 좌우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2년 1월 1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고르바초프는 사임 연설에서 국내 개혁 정책과 [[데탕트]]는 옹호했으나 "새체제가 작동하기도 전에 구체제가 무너져 버렸다"고 말했다.<ref>{{서적 인용|url = https://www.worldcat.org/oclc/907585907 |제목 = The world transformed : 1945 to the present |저자 = Michael H. Hunt |출판사 = Oxford University Press |날짜 = 2016년 |isbn = 9780199371020 |쪽 = 323–324 |oclc = 907585907}}</ref> 같은 날 [[미국의 대통령]] [[조지 H. W. 부시]]는 소련의 나머지 11개 공화국의 독립성을 정식으로 인정한다는 연설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700329105001 |제목 = 부시「독립국聯邦」승인 |출판사 = 경향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7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12월 26일, [[소련 최고 소비에트]] 상원 격인 [[연방회의민족회의]]는 소련 및 민족회의 자신에 대한 해체 투표를 열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700289106003 |제목 = 최고회의 해산 결의 "이제 우리가 떠나야 할 때" |출판사 = 한겨례신문 |날짜 = 1991년 12월 27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하원 격인 [[민족회의연방회의]]는 12월 12일 러시아 대표단이 철수하며 정족수를 못채워 사실상 기능을 중지하였다) 다음 날 27일부턴 옐친이 고르바초프가 사용했던 전 사무실을 이어받아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800209204002 |제목 = 옐친 집무개시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8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800209204008 |제목 = 옐친 크렘린宮집무실 앞당겨 차지 고르비 출근했다 씁쓸히 발길돌려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8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2일}}</ref> 1991년 말까지 러시아가 인수인계하지 않은 소련 연방 기관은 운영을 중지했고 개별 공화국은 중앙정부로 승격되어 통치를 시작했다.
 
알마아타 조약에선 유엔 회원국 여부를 포함한 여러 문제도 다루었다. 특히 러시아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소련의 유엔 권한을 승계받을 권한이 있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900209204009 |제목 = 유엔 러共대사 安保理 첫참석 |출판사 = 동아일보 |날짜 = 1991년 12월 29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소련 유엔 대사는 옐친 대통령 명의로 1991년 12월 24일 알마아타 조약에 의해 러시아가 소련의 승계국가임을 통보한 편지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500099204013 |제목 = 蘇 UN의석 인수 러시아, 공식 통보 |출판사 = 매일경제 |날짜 = 1991년 12월 25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다른 유엔 회원국에게 이의제기 없이 지나간 후, 1991년 12월 31일에 이 편지가 접수되고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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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 갈등 ===
소련 붕괴 직전 몇 년간몇년간 연방 공화국 내 여러 지역에서 민족간 충돌이 일어났다. 소련 붕괴 후 민족 분쟁이 일어났던 대부분의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시작되었다.
 
*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제르바이잔인-아르메니아인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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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나라 그림|Flag of Chechen-Ingush ASSR 1978.svg}}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 - 1991년 11월 1일
* ''{{국기나라|남오세티야}}'' - 1991년 11월 28일
* {{국기그림|러시아|1991}} [[러시아|러시아 SFSR]] - 1991년 12월 12일(이 날 [[러시아 최고 소비에트|러시아 SFSR 최고 소비에트]]는 벨라베자 조약을 인준하고 [[소련 수립 조약|1922년 소련 조약]]을 말소하고 [[소련 최고 소비에트]]에서 러시아 대표단을 철수시켰다.)
* {{국기그림|카자흐 SSR}} [[카자흐스탄]] - 1991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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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시민의 57%가 소련의 붕괴를 후회했으며, 30%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청년층보다 장년층일수록 소련에 대한 향수가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ref>{{뉴스 인용 |url = http://en.ria.ru/russia/20140115/186524071/Over-Half-of-Russians-Regret-Loss-of-Soviet-Union.html |제목 = Over Half of Russians Regret Loss of Soviet Union |출판사 = Sputnik |날짜 = 2014년 1월 15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2005년 2월 시행한 비슷한 여론조사에선 우크라이나 시민의 50%가 소련 해체를 후회한다고 밝혔다.<ref>{{웹 인용 |url = http://www.angus-reid.com/polls/20626/russians_ukrainians_evoke_soviet_union/ |제목 = Russians, Ukrainians Evoke Soviet Union |출판사 = Angus Reid Global Monitor |날짜 = 2005년 1월 2일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43508/http://www.angus-reid.com/polls/20626/russians_ukrainians_evoke_soviet_union/ |보존날짜 = 2012년 6월 16일}}</ref> 2016년 우크라이나에서 시행한 같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련 붕괴의 여파의 휴유증을 겪은 시민들 중 30%만 붕괴를 후회했고, 50%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ref>{{웹 인용 |url = http://ratinggroup.ua/research/ukraine/c910ad1d40079f7a2a28377c27494738.html/ |제목 = Dynamics of nostalgia for USSR |출판사 = "Rating" sociological group |날짜 = 2015년 5월 10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2016년 1월 25일,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탈린레닌]]을 비판하면서비난하면서 소련이 해체되면서 각 공화국이 이탈할 정치적 권리가 있다며 옹호하였다.<ref>{{웹 인용 |url = http://m.sputniknews.com/politics/20160125/1033697183/putin-lenin-destroed-ussr.html |제목 = Putin: Lenin’s Ideas Destroyed USSR by Backing Republics Right to Secession |출판사 = sputniknews.com |날짜 = 2016년 1월 25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소련이 붕괴되며 각 공화국의 경제적 유대 관계가 붕괴되며 [[동구권]] 및 [[구소련 국가]]의 [[생활 수준]]은 [[대공황]]보다 더 심한 수준<ref>{{웹 인용 |url = http://worldbank.org/transitionnewsletter/janfeb2002 |제목 = What Can Transition Economies Learn from the First Ten Years? A New World Bank Report" |출판사 = World Bank Transition Newsletter |날짜 = 2002년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 }}{{깨진 링크|url=http://worldbank.org/transitionnewsletter/janfeb2002 }}</ref><ref name=Russia>{{뉴스 인용 |url = https://query.nytimes.com/gst/fullpage.html?res=9B03E4D91E3AF93BA35753C1A9669C8B63 |제목 = Who Lost Russia?" |출판사 = 뉴욕 타임스 |날짜 = 2000년 10월 8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으로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bbc.co.uk/1/hi/business/966616.stm |제목 = Child poverty soars in eastern Europe |출판사 = BBC 뉴스 |날짜 = 2000년 10월 11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23일}}</ref> [[빈곤]] 및 [[경제적 불평등]] 문제도 심해져서, 1988년-1989년, 1933년-1995년 사이 구소련 국가의 [[지니 계수]]는 평균 9% 정도 상승했다.<ref>{{서적 인용|저자 = Walter Scheidel |제목 = The Great Leveler: Violence and the History of Inequality from the Stone Age to the Twenty-First Century |출판사 = Princeton University Press |날짜 = 2017 |isbn = 978-0691165028 |쪽 = 222 |url = https://books.google.com/books?id=NgZpDQAAQBAJ&lpg=PP1&pg=PA222#v=onepage&q&f=false}}</ref> 심지어는 [[1998년 러시아 금융 위기]] 이전에도 러시아의 GDP는 1990년대 초반의 절반에 불과했다.<ref name=Russ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