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홍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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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상홍양의 정책에 반발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원 (전한)|시원]] 6년(기원전 81년), 전국의 지식인들이 수도로 와 상홍양의 정책을 비판하고 소금·철·술의 전매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사공 (관직)|어사대부]] 상홍양은 이에 반론을 펼쳤고, 그 결과 술의 전매는 폐지되었으나 이외의 정책은 유지되었다.
 
한편 무제가 후원 2년(기원전 89년87년) 갑자기 죽으면서 어사대부가 되어 대사마·대장군 [[곽광]], 거기장군 [[김일제]], 좌장군 [[상관걸]]과 함께 무제의 병상에서 유조를 받아 어린 소제의 보정을 맡았다. 그러나 모든 결정은 보정대신 중 곽광이 오로지했다. 시원 7년(기원전 80년), 상관걸과 함께 [[유단 (연날왕)|연날왕]]을 제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주살되었다.
 
== 출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