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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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시데하라 기주로 내각은 각의 결정을 통해 “쇼와 천황은 대미 교섭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으며, 전쟁 중의 모든 결정은 [[일본 제국 헌법]]의 관례에 따른 단순한 재가에 지나지 않았다”며 쇼와 천황에게는 전쟁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ref name="이창위_308">이창위, 308쪽 ~ 310쪽.</ref> 또, 천황제를 일본 국민의 구심점으로 판단한 맥아더는 1946년에 “천황제를 강제로 무너뜨리면 일본 국민들이 반발하여 대규모 게릴라전으로 대항할 것이며 그러한 게릴라전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1백만 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육군참모총장에게 보내 쇼와 천황의 면책을 지지했다.<ref name="이창위_308"/> 이렇게 쇼와 천황에게 법적으로 전쟁 책임을 묻는다는 사안은 유야무야로 흘렀다. 나카무라 마사노리는 쇼와 천황의 면책에 대한 배경으로 맥아더가 일본 점령 정책을 성공시켜 여론의 지지를 얻은 뒤 미국 대통령이 되려 했다는 맥아더 개인의 야심과, 쇼와 천황을 지도한 가정교사를 비롯한 [[퀘이커교]] 신자들의 지지를 지적했다.<ref>박진우, 164쪽 ~ 170쪽.</ref> 또, 요시다 유타카는 “쇼와 천황이 재판에 서거나 퇴위를 당한다 하더라도 맥아더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맥아더가 쇼와 천황의 면책에 대한 근거로 주장한 것들은 천황을 맥아더 자신이 일본 통치에 용이하게 이용하려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맥아더가 꾸며낸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ref>박진우, 239쪽.</ref>
 
쇼와 천황은 재판을 받지 않았지만, “쇼와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는 시각은 여전히 있었다. 쇼와 천황이 병석에 누워 있던 1988년 12월 7일, [[나가사키 시]]에서 열린 시의회에서 [[모토시마 히토시]] 시장은 시의원의 “쇼와 천황이 태평양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쇼와 천황에게도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ref name="이창위_308"/> [[자유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모토시마 시장에게 발언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으나 모토시마는 “한번 내뱉은 발언을 철회한다는 것은 정치가에게 죽음이나 다름이 없다”면서 완강히 거부했고 “병사들에게 ‘천황 폐하를 위해 기꺼이 죽으라’고 가르친 내게도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ref name="이창위_308"/> 일부 국민들은 격려의 편지를 보냈지만 보수 단체를 중심으로 비난과 협박의 내용을 담은 전화와 편지가 모토시마 앞으로 쇄도했다. 자유민주당은 모토시마가 겸하고 있던 고문직을 박탈했으며 모토시마는 [[아키히토]]가 새로운 천황이 된 뒤인 1990년 1월에는 극우 단체 [[세이키주쿠]]의 간부가 쏜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까지 했다.<ref name="이창위_308"/> 하지만 쇼와 천황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쇼와 시대의 자료들이 국민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하자 객관적으로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많아졌다. 진보적 성향의 언론인 [[아사히 신문]]은 2001년 8월 15일자 사설에서 “1945년의 원점에서 다시 서보면 결국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황군에 대한 모든 명령이 육해군의 통수권자인 쇼와 천황의 이름으로 내려졌다. 쇼와 천황은 전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ref name="이창위_308"/> 또, NGO들이 2000년 12월 도쿄에서 사적으로 개최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는[[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는 쇼와 천황에게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2686452 '日 추악한 역사', 세상 밖으로 끌어낸 수요집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13일.</ref>
 
=== 천황 폐위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