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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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8년 지역 최초로 조·석간 6면 발행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9월 역시 지역 최초로 서울지사를 설치했다.1959년 4월15일에는 부산문화방송을 인수했다. [[김지태]]는 [[1952년]] 제4대 사장으로 재취임했고 [[1959년]] 자신이 개국한 [[부산문화방송]]을 겸영하다가, [[1962년]] 5월 5·16장학회(1982년 [[정수장학회]]로 개칭)에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의 지분을 넘기고 사장에서 퇴임했다.
 
(자발적으로 넘긴 것이 아니라 박정희가 칼만 안들었지, 도둑처럼 빼앗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기에재임 시기에 고 김지태 유족이 문화방송과 부산일보 주식반환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에서는 "주식의 불법적인 강탈은 인정되나, 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나서 반환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원고패소 판결로 판시하였다!)
 
이때 반환되었다면 503 박근혜의 지분이 있는 정수장학회로부터 MBC 문화방송과 부산일보는 영원히 박정희/박근혜/5'16 쿠테타 세력과 결별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한것이 역사의 한이 되어버렸다!)
 
1960년 4월12일 부산일보 1면을 통해 보도된 ‘김주열군의 시신 사진’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ref>{{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