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3번째 줄:
* 원삼국시대 : [[마한]]의 54개국 중 [[불미국]](不彌國)이었다고 추정된다.
* 삼국시대 : [[마한]]이 [[백제]]에게 정복당하며 불미국이 있던 지역은 발라군(發羅郡)이 되었다. [[백제]] 멸망 후에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대방주(帶方州)가 된다.
* 남북국시대 : [[통일신라]]는 웅진도독부를 몰아낸 후 전국을 9주로 편제하고 발라군을 발라주(發羅州)로 승격시켜 오늘날의 전남지방을 관할하는 치소로 삼았으나 발라주는 9년 만에 다시 발라군으로 강등되고 무진군(武珍郡, 지금의 광주)을
* 후삼국시대 : [[903년]]([[태봉]] [[궁예]] 3년/[[후백제]] [[견훤]] 12년/[[신라]] [[효공왕]] 7년)에 금성군은 나주(羅州)라 개칭된다. [[태봉]]/[[고려]]의 해상정복으로 [[월경지]]가 된다.
* 고려시대 :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목 (행정 구역)|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이 때, 나주에 '''나주목'''(羅州牧)을 두었다. 995년(성종 14)에 이르러 병마절도사를 두어 군대의 칭호를 진해군이라 하였다. 1011년(현종 2) 거란의 침입으로 잠시 피난왕도가 되었으며(기간 1011년 1월 13일~1월31일까지) 1018년 전국8목중 하나로 나주목이 되어 1895년까지 계속되었다. 나주목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5개의 속군과 11개의 속현을 거느리고 있었고, 지방관이 파견된 1부, 4군 4현의 영군현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