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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 [[마한]]이 [[백제]]에게 정복당하며 불미국이 있던 지역은 발라군(發羅郡)이 되었다. [[백제]] 멸망 후에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대방주(帶方州)가 된다.
* 남북국시대 : [[통일신라]]는 웅진도독부를 몰아낸 후 전국을 9주로 편제하고 발라군을 발라주(發羅州)로 승격시켜 오늘날의 전남지방을 관할하는 치소로 삼았으나 발라주는 9년 만에 다시 발라군으로 강등되고 무진군(武珍郡, 현 [[광주광역시]])을 무진주(武珍州)로 승격시켜 무진주 중심의 지방편제로 개편하고 현 반남면 지역은 반남군(潘南郡)으로 승격시켰다. 이와 함께 신라의 군사조직인 10정 가운데 미다부리정을 현 남평읍 지역인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에 설치하여 무진주 관내의 치안을 유지하고 토착세력을 통제하게 한다. 686년(신라 신문왕 6년) 통의군(通義郡)으로 개칭되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금성군(錦城郡) 혹은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된다.
* 후삼국시대 : [[903년]]([[태봉]] [[궁예]] 3년/[[후백제]] [[견훤]] 12년/[[신라]] [[효공왕]] 7년) [[태봉]]의 국왕 [[궁예]]는 [[왕건]]을 파견해 금성군을 후백제에게서 점령하고 나주(羅州)라 개칭한다.
* 고려시대 :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목 (행정 구역)|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이 때, 나주에 '''나주목'''(羅州牧)을 두었다. 995년(성종 14)에 이르러 병마절도사를 두어 군대의 칭호를 진해군이라 하였다. 1011년(현종 2) 거란의 침입으로 잠시 피난왕도가 되었으며(기간 1011년 1월 13일~1월31일까지) 1018년 전국8목중 하나로 나주목이 되어 1895년까지 계속되었다. 나주목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5개의 속군과 11개의 속현을 거느리고 있었고, 지방관이 파견된 1부, 4군 4현의 영군현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
* 조선시대 : 세조 2년([[1457년]]) 병영의 하부조직인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진장(鎭將)인 병마사(兵馬使)는 목사(牧使)가 겸임하였으며 효종 8년(1657년) 나주거진(羅州巨鎭)을 전라우영(全羅우右營)으로 개편함으로써 우영장(右營將)을 두어 2군 8현의 군비를 장악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