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루스벨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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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의 5대조 요한 루스벨트<ref>존이라 하지 않고 요한 또는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고집했다.</ref> 는 [[공화당 (미국)|공화당]] 당원이었지만 그의 형제였던 프랭클린의 5대조 야곱 루스벨트와 그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민주당 (미국)|민주당]]원이었다. 그러나 친척간에 정치 견해로 싸우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프랭클린의 아버지 [[제임스 루스벨트]]는 시어도어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가 [[세라 델러노]]를 만나 재혼하기도 했다.
 
어머니 마사는 [[프랑스]]의 칼뱅파[[칼뱅주의]] 신교도인[[개신교]] 신자인 [[위그노]]([[프랑스 신자였으며개혁교회]])였으며, [[스코틀랜드인]]과 [[프랑스]]인, [[아일랜드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 여성으로 [[조지아주]] 출신이었다. 뉴욕 주 출신 시어도어 시니어를 만나 [[뉴욕주]]로 건너왔다. 시어도어에게는 여러 형제가 있었는데 위로 누나인 안나와 남동생 엘리엇, 여동생 코린 등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남동생 엘리엇 루스벨트는 [[1894년]] 34세의 나이에 사망하여 시어도어는 남동생의 자녀들까지 떠맡아서 양육해야 했다. 이 중 조카딸 [[엘리너 루스벨트]]는 후일 32대 대통령 프랭클린의 아내가 되는 이이다.
 
==== 청소년기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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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통령 시절 ===
[[1900년]]의 대통령, 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입후보, 시어도어와 매킨리의 선거 유세는 시어도어의 무훈과 명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시어도어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부통령직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중, [[1901년]] [[9월 14일]] 대통령 매킨리의 임기 중 암살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제26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취임 당시 그의 나이가 42세였다. 이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연소로 취임한 대통령이다.
 
=== 대통령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