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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姜功立率兵歸降圖.jpg|섬네일|300px|《만주실록(滿洲實錄, {{llang|mnc|{{만몽 유니코드|ᠮᠠᠨᠵᡠ ᡳ<br />ᠶᠠᡵᡤᡳᠶᠠᠨ<br />ᡴᠣᡠᠯᡳ}}|Manju-i Yargiyan Kooli}})》에 수록된 [[사르후 전투]]에서 패배한 조선군의 항복을 받고 있는 네 버이러를 묘사한 《강공립솔병귀향도(姜功立率兵歸降圖, {{llang|mnc|{{만몽 유니코드|ᠰᠣᠯᡥᠣ ᡳ<br>ᡩᡠ<br>ᠶᡠᠸᠠᠨᡧᡠᠸᠠᡳ<br>ᡤᡳᠶᠠᠩ<br>ᡤᡠᠩ<br>ᠯᡳᠶᡝᡳ<br>ᠴᠣᠣᡥᠠ<br>ᡤᠠᡳᡶᡳ<br>ᡩᠠᡥᠠᡥᠠ}}|Solho-i du yuwanšuwai giyang gung liyei cooha gaifi dahaha}})》]]
 
1622년 4월 13일, 누르가치는 자신의 일곱 아들과 친동생 슈르가치의 아들 아민을 부른 자리에서 자신의 후계자믄 힘센 자나 강한 자는 안 되고, 팔기의 기주 여덟 명을 여덟 왕으로 삼게 하고, 여덟 왕이 논의하여 말을 잘 듣는 사람을 한으로 추대하고, 만약 한이 여덟 왕의 의견을 묵살하고 폭정을 일삼는다면 한을 교체하고, 만약 한이 교체 의견을 거부한다면 폐위할 것을 당부했다.<ref>{{서적 인용|제목=만문로당|연도=1778|인용문=ilan biyai ice ilan i inenggi.jakūn juse acafi ama han de abkai buhe doro be adarame toktobumbi. adarame ohode. abkai hūturi enteheme ombi seme fonjire jakade. han hendume. ama be sirame gurun de ejen obure de. hūsungge etuhun niyalma be ume ejen obure. husungge etuhun niyalma gurun de ejen ohode. ini hūsun be dele arame banjifi. abka de waka ojorahū. emu niyalma udu bahanambi seme. geren i hebe de isimbio. jakūn juse suwe jakūn wang oso. jakūn wang emu hebei banjici. ufararakū okini. jakūn wang suweni gisun be mararakū niyalma be tuwafi. suwe ama i sirame gurun de ejen obu. suweni gisun be gaijarakū. sain jurgan be yaburakū oci. jakūn wang suweni sindaha han be suwe halame. suweni gisun be mararakū sain niyalma be sonjofi sinda. tere halara de. efime injeme hebei icihiyame halaburakū. marame cira aljaci. sini ehe niyalmai ciha obumbio. tuttu oci. ehe i halambi kai. jakūn wang suweni dolo. aika baita gurun i doro dasara de.}}</ref>
누르가치는 홍 타이지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고 [[팔기제|팔기]]의 [[버이러]]들과 공동으로 협의하여 국가를 통치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사망했다. 홍 타이지가 계승한 국가는 팔기의 연맹체였고, 그것은 8개의 대족이 연합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 누르가치는 창업 군주였고 자신이 아들들과 조카들을 팔기의 버이러에 임명했기 때문에 권력과 권위를 자신에게 집중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홍 타이지는 아버지와 같은 창업 군주가 아니었다. 홍 타이지는 자신과 함께 [[후금]]의 최고 권력자였던 [[다이샨]], 아민, 망굴타이의 양해를 받아 [[칸|한]]의 지위를 계승했다.<ref>{{서적 인용|author=이훈|authorlink=|title=만주족 이야기|series=|publisher=너머북스|isbn=9788994606514|page=167}}</ref>
 
홍 타이지는 아버지처럼 권력을 독점하지 못했고 무형의 권위도 없었다. 홍 타이지는 즉위한 후에 동로 대정전에서 다른 세 명의 버이러와 함께 의자 네 개에 나란히 착석해서 정무를 집행했다. 명목상 후금의 [[칸|한]]이었으나 실질적으로 한이 네 명 있는 것과 같았다.<ref>{{서적 인용|author=이훈|authorlink=|title=만주족 이야기|series=|publisher=너머북스|isbn=9788994606514|page=16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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