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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년 9월 30일에, 누르가치가 병사하자, 요토가 그 동생 사하랸과 함께 [[다이샨]]에게 홍 타이지를 받들어 한의 지위를 이어받게 할 것을 청하자, 다이샨이 여러 버이러에게 홍 타이지를 강력하게 지지함을 선언했다.<ref>{{서적 인용|제목=[[청사고]]|인용문=十一年八月,太祖崩,岳託與其弟薩哈璘告代善,請奉太宗嗣位,代善曰: “是吾心也!” 告諸貝勒定策。 太宗辭讓再三,代善等請益堅,乃即位。 是冬,伐蒙古喀爾喀紥魯特部,擒貝勒巴克等,斬鄂爾齋圖,俘所屬而歸。}}</ref>
 
누르가치에 이어 새로운 한으로 즉위한 홍 타이지는 암바 버이러 다이샨, 아민 버이러, 망굴타이 버이러 세 버이러를 형으로 대우하며 한의 양측에 앉게 했고, 어느 곳이든지 항상 한과 나란히 앉게하고 아래에 앉도록 하지 않았다.<ref>{{서적 인용|[[만문로당]]|연도=1778|인용문=daci manju gurun i doro hengkilere de. amba beile. amin beile. manggūltai beile. ilan beile be ahūn seme kunduleme han i juwe ashan de tebuhe. yaya bade inu han i adame tebure dabala. fejile teburakū bihe.}}</ref>
홍 타이지는 아버지처럼 권력을 독점하지 못했고 무형의 권위도 없었다. 홍 타이지는 즉위한 후에 동로 대정전에서 다른 세 명의 버이러와 함께 의자 네 개에 나란히 착석해서 정무를 집행했다. 명목상 후금의 [[칸|한]]이었으나 실질적으로 한이 네 명 있는 것과 같았다.<ref>{{서적 인용|author=이훈|authorlink=|title=만주족 이야기|series=|publisher=너머북스|isbn=9788994606514|page=167}}</ref>
 
홍 타이지는 후금의 식량과 물자의 부족을 타개 하기 위하여 [[조선]] 연해의 가도(樓島)에 근거지를 두고 배후를 위협 하던 [[명나라]] 장수 [[모문룡]]을 친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침공하였으니 이것이 [[정묘호란]]이다.<ref>구범진,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민음사</ref> 이때 홍 타이지는 조선과의 관계를 공식화하고 대명전쟁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희생(犧牲)과 맹서(盟誓) 그리고 저주(詛呪)라는 형식을 수반하는 맹약을 강요하여 체결하였고, 이 맹약을 통해 후금은 [[병자호란]] 이전까지 조선의 대외관계를 상당히 제한했다.<ref>남호현, 《朝淸關係의 초기 형성단계에서 ‘盟約’의 역할》, 조선시대사학회</ref> 홍 타이지는 정묘호란을 통해 하늘이 우리를 사랑하여 조선을 항복시켰다고 선언했다.<ref>{{서적 인용|저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만문노당역주회|제목=만문노당역저: 태종|날짜=2017년 9월 30일|쪽=99~103}}</ref>
 
1629년 11월 홍 타이지는 군대를 이끌고 처음으로 명나라의 영토로 진격했다. 그는 중원의 4개의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침범했다. 거주민들을 관대하게 다루라는 홍 타이지의 명령이 무색하게도, 야전 지휘관들은 천안과 영평의 주민들을 살육했다. 그것은 대민관계에 악영향을 미쳤고, 변방민들을 회유하려던 홍 타이지의 노력에 큰 흠집을 냈다. 홍 차이지의 죄를 범한 부하들을 공개적인 재판을 통해 처벌했다.<ref>{{서적 인용|author=William T. Rowe|authorlink=|title=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series=21세기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publisher=너머북스|isbn=978-89-9460627-9|page=4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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