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합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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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밴 뷰런]] 대통령의 임기 후에([[윌리엄 헨리 해리슨]]이 취임했지만, 1개월도 안 돼 급사했기 때문에)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존 타일러]]도 취임 초기에는 합병에 주저했다. 하지만, [[1843년]] 텍사스가 영국에 중개를 의뢰하여 멕시코에 접근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태도를 바꾸어 통합 방안을 지지했다. 멕시코의 독재자 산타 아나가 텍사스의 합병이 "선전 포고와 같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일러는 [[1844년]] 4월 텍사스 합병 조약을 체결했다. 미국 헌법은 조약의 체결은 대통령의 직권이지만, 비준을 위해서는 상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에서 6월 8일 35대 16이라는 큰 차이로 부결되었고 비준을 얻지 못했다.
 
[[File:Emory Map of Texas 1844 UTA.jpg|thumb|''Map of Texas and the Countries Adjacent'', [[William Hemsley Emory]], 1844]]
 
영토 확장을 주장하며 텍사스의 합병에 적극적인 [[제임스 K. 포크]]가 [[184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텍사스 합병에 관해서는 포크와 대립이 없었던 타일러는 포크와 상담하여, 상원의 비준이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조약이 아니라 상하 양원 합동 결의에 따른 통합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몇 번에 걸친 법안 제출과 수정 결의안이 제출되는 등 큰 혼란 끝에 [[1845년]] [[2월 28일]] 상원에서 27 대 25의 근소한 차이로, 하원에서는 132 대 76으로 선택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고 결의했다. 그 다음 날 타일러는 이 결의를 시행하는 서명을 했다. 타일러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3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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