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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甑山敎)란 어휘는 현재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강증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모든 [[종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증산종교, 증산계 종교라는 의미와 [[이상호 (1888년)|이상호]]가 세운 '증산교'라는 종교를 가리키는 의미이다. 또한 [[증산도]]와도 구별되고 있다.
 
== 역사 ==
증산교(甑山敎)는 [[전라남도]] [[해남군|해남]] 출신의 [[이상호]](李祥昊)가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만주·북경 등을 유랑하다가 28세 때 용화동에서 증산교를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강증산]]이 죽자 [[1919년]] [[차경석]](車京石)이 [[보천교]](普天敎)의 60방주를 조직할 때 중요직책을 맡게 되어 보천교 총령원장까지 피임되었으나 차경석과 뜻이 맞지 않아 탈퇴하였다고 한다.
 
[[1925년]] 또다른 제자 김형렬(金亨烈)이 세운 미륵불교(彌勒佛敎)로 옮겨 ≪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를 집필하였는데 미륵불교 간부들과도 의견이 맞지 않아 [[1928년]] 임경호(林敬鎬){{·}}동생 이정립(李正立) 등과 함께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동화교(東華敎)를 세우고 통정(統正)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