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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민승호에게 충정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에겐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민비는 가까운 친척을 배척하고 촌수가 좀 먼 [[민태호]]의 아들 [[민영익]]을 양자로 삼겠다고 했다.<ref name="hwang40">황현, 《매천야록》 (정동호 역, 일문서적, 2011) 40페이지</ref> 그러자 [[민태호]]는 반대하였고 그의 동생 [[민규호]]가 형을 협박했다. "천의(왕후의 뜻)를 어찌 감히 어기겠소어기겠습니까? 양자를 보내어 함께 부귀를 누리는 것도 좋지 않겠소이까않겠습니까?" 그래서 [[민태호]]의 아들 영익은 [[민승호]]의 양자로 들어갔고, 뒤이어 [[민규호]]는 [[이조]]판서 겸 도통사가 되었다.<ref name="hwang40"/> 이후 [[1892년]] 봄 운현궁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가 민승호의 죽음이 흥선대원군과 관련이 있다고 여긴 명성황후의 보복이라는 주장이 있다.<ref name="p315"/>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