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렝겔라 나바라 왕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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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렝가리아는 결혼을 위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함께 시칠리아의 메시나에 도착했으나, 리처드 1세가 즉위하자마자 즉시 [[제3차 십자군]] 원정에 나서는 바람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베렝가리아는 리처드 1세의 누이이자 서거한 시칠리아 선왕의 왕비였던 [[시칠리아의 조안|조안]]과 십자군 원정에 합류했다. 성지로 가던 도중 폭풍우를 만나 베렝가리아와 조안이 탄 배가 [[비잔티움 제국]]의 [[키프로스]] 태수 [[이사키우스 콤네누스]]에게 납치당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리처드는 키프로스를 점령하고 [[1191년]] [[5월 12일]] 베렝가리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리처드 1세는 [[오스트리아]]에 유폐당했다가 잉글랜드로 돌아온 후에도 베렝가리아와 함께 지내지 않았다. [[교황 첼레스티노 2세]]는 리처드 1세에게 아내와 제대로 된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을 명했다. 그 후 리처드 1세는 매주 한번씩 베렝가리아와 함께 교회에 갔으나 유지된 기간 여부는기간은 알 수 없다.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199년]] 리처드 1세가 서거하자 베렝가리아는 진정으로 비탄에 빠졌다.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존|존 왕]]은 베렝가리아에게 선왕의 미망인으로서 받아야 할 연금을 주려 하지 않았고, [[헨리 3세]]가 연금을 지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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