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종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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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동치 5년)에는 [[섬감총독]]으로 전임하여, [[회족]](이슬람교도)인 [[둥간족]]의 반란([[둥간 혁명]]) 진압을 맡아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염군]]이 날뛰자 회교도 진압은 제쳐두고 염군 토벌을 먼저 수행해야 했다. 당시 염군은 [[이홍장]]의 활약으로 동서로 분열되었고, 이전의 기세가 약화되어 있었다. 때문에, 좌종당은 위광도, 요응기, 원보항, 진식, 송경, 조병균 등을 이끌고 이홍장과 함께 염군 토벌을 시작하였다. 장종우가 이끄는 서염군의 평정에 전념하였고, 1867년(동치 6년) 동염군은 이홍장의 회군에 포위되어 괴멸되었고, 이어 이듬해 1868년 6월 서염군도 평정되었다.
 
배후의 안전이 확보되자, 같은 해 10월에 다시 [[둥간 혁명|둥간족]]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여 임지인 [[섬서성]], [[감숙성]]으로 진군하여 섬서성의 [[서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북서쪽 동지원에 주둔하는 [[백언호]]의 회족군을 격파하고, 섬서를 평정했다. 그러나 [[마화룡]] 등의 잔당들이 감숙성 동부 금적보에서 농성하며 저항을 이어갔다. 좌종당도 1869년(동치 8년)에 포위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잔당들의 저항이 장기화되자 북경 정부에서도 소환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1871년(동치 10년) 1월에 책임을 느낀 부장 유송산이 야습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전사하는 타격까지 입게 되었다. 유송산의 조카 유금당은 설욕을 하기 위해 금적보를 급습하여, 결국 금적보를 함락시키고 마화룡을 처형하여 임무를 달성하게 되었다. 회민들을 달래기 위해 도망간 백성들을 다시 불러 정착시키고, 토지 개간과 식량 원조를 통해 회민의 불만을 무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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