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루스 알렉산데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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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했으나 난세에 단호하지 못했떤 그의 나약한 지배체제는 결국 내란으로 무너졌으며, 그 뒤 50년 동안 로마는 혼란에 빠졌다.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가 황제로마 군주였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1세)(193~211 재위)의 처제였다.
218년 시리아 주둔 레기온(군단)은 14세밖에 안된 알렉산데르의 사촌 엘라가발루스(헬리오가발루스)를 군주로 선포했으며 221년에는 율리아 마이사가 그를 설득해 알렉산데르를 후계자로 삼게 했다.
222년 3월 황실 근위대는 엘라가발루스를 살해했는데 이는 아마도 율리아 마이사와 알렉산데르의 어머니 율리아 마마이아의 사주를 받은 듯하다. 뒤이어 알렉산데르는 무사히 왕위에 올랐다. 그가 재위하는 동안 실권은 외할머니(226 죽음)와 어머니가 쥐고 있었다. 16명의 원로원 의원으로 섭정회의가 구성되었으나 원로원은 명목상 지배권을 가졌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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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게르만족을 돈으로 매수해 평화조약을 맺으려 하다가 군대의 분노를 샀다.
235년초 군인들은 그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를 군주로 선포했다.
 
 
== 업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