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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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미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양국이 동맹 관계에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미국은 강화조약을 통해 한국전쟁으로 본격화된 [[냉전]]에서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를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일본은 이를 통해 피점령 상태에서 벗어나 서방 세계의 일원이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이 반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연합국]]과 일본만의 강화조약 비준은 전후 보상 문제의 해결이나 아시아 각국과 일본 간의 국교 정상화 같은 문제는 덮어둠으로써 이후 외교적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교전국이 아니라 일본제국의 식민지라는 지위였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은 강화 조약에 초대조차 받지 못하였으며,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은 조약 자체를 거부하였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강화조약과 별도로 보상 협상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f>오구마 에이지, 한철호 역, 일본이라는 나라, 책과 함께, 2007, {{ISBN|89-91221-25-4}}, 82-88쪽</ref>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대부분의 나라는 전쟁피해에 대해 배상청구권을 포기하게 되었으나 국회에서 조약 비준이 부결된 인도네시아, 배상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은 필리핀과 [[남베트남]], 그리고 조약에 초대 받지 않은 [[중화인민공화국]]과 협상문제가 남게되었다. 일본은 1955년부터 1959년에 걸쳐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남베트남에 대해 보상을 하였다. 일본이 정식으로 침략 피해에 대해 배상한 것은 이 네 나라 뿐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경제 원조를 하거나 무상 경제 협력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일기본조약을[[한일기본조약]]을 통해 배상청구권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며 경제원조를 하는 것으로 하였다.<ref>같은 책, 99-100쪽</ref>
 
=== 서명과 비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