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광복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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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경향신문
|날짜=2018.03.18}}</ref>
 
소설광복군에 근거하여 많은 가짜 정보들이 유통되었다. 육군본부가 발간한 '창군전사', 장창국이 출간한 '육사 졸업생'에도 등장한다.
 
‘만주에 있던 장교들은 그들대로의 지하조직이 있었다. 박정희, 신현준, 이주일 등은 광복군 제3지대의 비밀 광복군으로서 거사 직전에 해방을 맞이했다.’ (육군본부 발간 ‘창군전사’ 265쪽)
 
창군전사 말고도 박정희를 비밀 광복군으로 묘사한 책은 더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합참의장, 국회의원을 지낸 장창국(사망)씨는 1984년 출간한 ‘육사 졸업생'에서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에 가담한 경위를 이렇게 기록했다.
 
“신태양악극단이 1945년 2월9일 (만주군) 7연대에 들어가 공연을 했다. 광복군은 이 악극단에 잡역부를 가장한 공작원 이용기를 투입했다. 이씨는 부대 간부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박정희 중위, 신현준 대위와 만나는 데 성공했다. 이씨는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의 직인이 찍힌 광복군 임명장을 박 중위와 신 대위에게 줬다. 이래서 그들은 광복군 비밀요원이 됐다.” (‘육사 졸업생’ 26쪽)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0177118
|제목=만주군 중위 박정희, '비밀광복군' 둔갑
|출판사 =세계일보
|날짜=2006.08.10}}</ref>
 
그러나 이는 모두 날조된 것이다. 부대장의 이름을 따 일명 '철석부대'로 불린 이 부대는 1939년 명월구에서 조선인 독립대대로 출발한 부대로 박정희는 이 부대에 간 적이 없다. 철석부대 출신인 박창암(육군 준장 예편, 작고)씨, 송석하(육군 소장 예편, 작고)씨 등은 생전에 필자에게 "박정희는 철석부대 문전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신태양 악극단' 단장을 지낸 작곡가 손목인(작고)씨는 생전에 "더러 군대 위문도 갔지만 철석부대는 들어본 일이 없고, 이용기라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필자에게 증언했다. 또 단원이었던 가수 신카나리아씨와 영화배우 황해씨 등도 지난 97년 필자에게 "이용기라는 이름은 기억에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49417
|제목=중위 진급 한달 뒤 일제패망에 낙담 해방 이듬해 패잔병 몰골 귀국선 타
|출판사 =오마이뉴스
|날짜=2004.08.24}}</ref>
 
소설 광복군의 여파는 최근까지 이어져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와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서도 독립군 박정희의 모습을 사실처럼 그려 독립운동가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8597
|제목=‘ 짝퉁 광복군 ’ 수두룩하다
|출판사 =한겨레21
|날짜=2005.06.24}}</ref>
 
=== 과장된 광복군 숫자와 가짜 독립유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