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의 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5번째 줄:
== 경과 ==
[[파일:0254 HM Monson Collection Vienna 1938 01 49 45 00.webm|섬네일|300px|left|수정의 밤 다음 날 촬영했으리라 추측되는 영상.]]
일설에 의하면 그린슈판은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파리 주재 독일 대사였던 [[요하네스 폰 벨체크]](Johannes von Welczeck, [[1878년]] [[9월 2일]] - [[1972년]] [[10월 11일]])를 암살하려고 계획했으나 마침 3등 서기관 라트가 용무 차 대사관저를 방문했다가 대신 저격당했던 것이다. 라트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라트는 나치를 반대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게슈타포]]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다. (1938년 [[11월 7일]]) 또 특정한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대사관에서 독일인 아무나 죽일 생각이었다고도 한다. 그린슈판이 라트를 사사로운 원한으로 말미암아 죽였다는 설은 더 논란이 되나 그런 건 상관없었다. 히틀러를 대신해 성명을 발표한 요제프 괴벨스는 히틀러가 시위는 허가하지 않지만, 자연발생적인 분노의 표출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암묵적인 폭동의 승인으로 받아들인 독일인들은 [[11월 9일]]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요제프 괴벨스]]가 라트가 암살된 사건에 항의하는 독일 국민의 "'''자연발생스러운 항위 시위'''"였다고 선전 매체를 동원해 보도한 이 사건의 결과로 점포 815개소, 주택 171동, 유대인 예배당 시나고그 193개소가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다. 유대인 2만 명이 체포되었고 하나 정확한 수치는 기록에 없다.
 
[[11월 10일]] 새벽 1시 20분에 [[제국보안본부]]의 수령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하이드리히]]는 전국의 경찰과 [[SS보안방첩부]]에 시위 운동 조직을 협의하라는 내용을 훈령했다. 이 훈령에는 유대인 상점과 집은 파괴할 것, 유대인 예배당은 주변에 불이 번질 염려가 없으면 소각할 것, 경찰은 시위를 저지하지 말 것, 가능한, 부유한 유대인을 우선 순위로 체포할 수 있는 만큼 체포하라는 명령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