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86번째 줄:
[[울돌목]](명량해협)은 수심이 얕아서 배가 항해할 수 있는 범위는 좁고, 그 중에서도 [[밀물]] 때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좁은 울돌목으로 한꺼번에 밀려와서 서해로 빠져 나가면서 해안의 양쪽 바닷가와 급경사를 이뤄 물이 쏟아지듯 빠른 조류가 흘렸다. 울돌목 물살의 또 다른 특징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암초]]가 솟아 있다는 점이다. 급조류로 흐르던 물살이 암초에 부딪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소용돌이]]치게 되는 것이다.<ref>울돌목(명량해협)에는 현재 [[진도대교]]가 건설되어 있으며 조류의 속도는 예전에 비해 다소 줄었다.</ref>
따라서 통제사 이순신과 제장들은 울돌목에서는 전투가 불가하다는것을 깨닫고는 판옥선을 이끌고 우수영(右水嶺) 앞바다인 임하도(林下島)로 진을 옮긴 것이다. 임하도는 [[도도다카토라]](藤堂高虎)의 "고산공실록(高山公実録)"에 기록된 대로 물살이 약한곳이요. 모리고정(毛利高政)의 "모리고동문서(毛利高棟文書)"에 기록된 대로 신성해협(명량해협)입구가 된다. (지금의 임하도 안쪽 해역은 간척이
일본 수군 지휘부는 순류에 맞춰 명량해협(울돌목)을 단숨에 넘어가 고니시 육군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특히 구루시마 수군은 원래 해적 출신으로 이 같이 물살이 빠른 지역을 근거로 했던 바, 빠른 물살에 익숙한 이들은 [[명량해협]]에서 이순신이 막는다 하더라도 무리없이 전개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br>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칸 히라우이몬 미치나가(菅平右衛門達長)의 서자인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菅野又四郎正陰)도 수전에 능한 일본군 장수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서해 물길을 잘 몰랐으니 당시 길목이었던 임하도(林下島)의 좁은 수로를 통과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