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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ttle of Poltava 1709.PNG|섬네일|오른쪽|400px|[[폴타바 전투]]에서]]
 
바다로의 교역로를 열기 위해 [[발트 해]]로의 진출이 필요했던 표트르는 [[1700년]] [[스웨덴]]의 [[칼 12세]]에 대항해 [[덴마크]], [[폴란드]]가 맺은 동맹에 참가하여 [[스웨덴]]과 [[대북방전쟁]]에 돌입했다. 전쟁 초기에는 전사 왕전사왕(戰士 王)으로 자칭할 정도로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난 [[칼 12세]]의 스웨덴 군에게 크게 패했으나([[1700년]] [[나르바 전투 (1700년)|나르바 전투]]), 표트르는 포기하지 않고 군을 재정비하여 다시 [[스웨덴]]에 도전, [[1709년]] [[폴타바]]에서 [[칼 12세]]가 친히 지휘하던 스웨덴 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다([[폴타바 전투]]). 스웨덴으로의 퇴로가 끊긴 [[칼 12세]]는 남쪽 [[오스만 제국]]으로 도주하여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었고, 이에 따라 [[1710년]] [[오스만 제국]]은 [[모스크바 대공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표트르는 [[1711년]] 오스만 제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하여 남쪽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이때 표트르는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분에 몹시 들떠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인 [[왈라키아]]([[루마니아]]), [[세르비아]], [[몰다비아]] 등이 자신을 지원해줄 것으로 믿었으나, 그가 병력을 이끌고 [[다뉴브 강]]에 도착했을 때 누구도 지원 병력을 보내주지 않았다. 마침내 프루트 강변에서 오스만군에게 포위되자 그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 항복하는 대가로 아조프와 흑해 함대를 넘겨주었다. 망명 중이던 스웨덴의 칼 12세도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칼 12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피해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10여년이나 계속했다. 본국으로 돌아온 표트르는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근처의 요새들, 그리고 크론슈타트의 [[조선소]]에 강력하고 현대적인 대규모의 [[해군]]을 조직할 것을 명령했다. 표트르가 새로이 구축한 해군은 [[1719년]] 당시 ‘해상의 왕자’라고 불리던 [[영국]]마저 두려워할 정도였다. 표트르는 이 함대로 항코 해전([[1714년]])에서 스웨덴 함대를 격파한 뒤 곧바로 육군을 동원해 핀란드를 강타했고, 여세를 몰아 스웨덴 본국으로 진군해 들어갔다. 숙적 칼 12세도 [[1718년]]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전사했고, 스웨덴 왕위를 물려받은 칼 12세의 처남 [[프레드리크 1세]]는 모스크바에 강화를 요청해 1721년에 [[대북방전쟁]]은 모스크바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스웨덴을 정복한 결과 고대 노브고로드의 영토를 회복했고 발트 해 연안에서는 강대국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이것을 발판으로 유럽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루스 차르국]]은 [[러시아 제국]]으로 선포되었다. 표트르에게는 [[임페라토르]](황제)라는 칭호가 붙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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