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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된 날짜(년월일)를 썼다.
 
===== 냉전 붕괴 이후 =====
[[1989년]] 12월 [[냉전]] 종식이 선언되고, 1989년 5월에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중-소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한-중 수교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에1991년 12월 26일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소련의 막대한 영향력에서 아래에서 벋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과 서방세력 외에도 대한민국과 수교하기 이른다. 그리고 아울러 노태우 정부의 한-소 수교의 성공이 중화인민공화국에게도 영향을 미쳐 한중 수교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ref>{{웹 인용|url=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2919|제목= 한-중 수교 (1992.8)|확인날짜= 2009-07-11|형식= |웹사이트= 국가기록원 나라기록|저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11012073757/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2919|보존날짜= 2011-10-12|깨진링크= 예}}</ref> [[1992년]] [[8월]]에 [[대한민국]]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다. 수교와 동시에 많은 문화교류를 통해서 한류 및 중류(中流)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2008년]] [[4월 27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2008년 하계 올림픽|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재한 중국인 및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 사태로 인해 [[한국인]] 및 [[외국인]]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2008년 중국인 성화봉송 폭력시위 사건]]) 이 때문에 각국 사이에 반한·반중 감정이 생겨나는 등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對)중화인민공화국 수출은 1168억3783만USD, 중화인민공화국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715억7360만USD(각 2010년)에 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1의 수출, 수입국이다. 한편, 대한민국의 대(對)홍콩 수출은 252억9434만USD, 홍콩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19억4593USD(각 2010년)에 달하여, 홍콩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4위의 수출국, 제32위의 수입국이다.<ref>{{웹 인용 |url= http://stat.kita.net/ | 제목 = 국가별 수출입 | 출판사 = 한국무역협회 }}</ref> 양국 사이에는 대한항공이 중국 내 20개 도시에서 26개 노선을, 아시아나 항공은 22개 도시 30개 노선을 각각 운항 중이다. 2010년 8월, 대한항공은 83%, 아시아나항공은 83.6%의 탑승율을 기록했다. 8월 한달 동안, 각각 35만2천명과 29만4천명의 탑승객을 운송하였다.<ref name="biz.chosun.com">{{뉴스 인용 |url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5/2010090500823.html | 제목 = 중국 노선 탑승률 사상 첫 80% 돌파 | 출판사 = 조선일보 | 날짜 =2010-09-06}}</ref> 대한민국 남자들의 국제결혼을 아내의 출신지 별로 볼 때,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여자가 가장 많다. 2000년 3,566건 (전체 6,945건 중 51%)에서 2008년 13,203건(전체 28,163 건 중 46.8%)으로 증가하였다.<ref>{{웹 인용 |url= http://www.kosis.kr |제목= 한국인 남편의 혼인종류/외국인 아내의 국적별 혼인 |확인날짜=2009-07-11 |형식= HTML |웹사이트= 국가통계포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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