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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홍재하'''(1892∼1960)는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했던 독립운동가. 20189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홍재하 선생은 '숨은 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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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일제에 맞서다 프랑스에 건너온 뒤에도 조국의 저항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독립운동가 홍재하(洪在廈·1898∼1960)의 구체적인 삶의 궤적이 재불 동포들의 노력으로 사후 60년 만에 확인됐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만주와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들어온 홍재하의 2남 3녀 중 차남 장자크 홍 푸안(76)씨가 브르타뉴 지방 생브리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30일(현지시간) 확인됐다.
 
홍재하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러시아와 북해를 거쳐 프랑스로 들어와 임시정부 인사들을 돕고 국내에 독립 자금을 댄 인물로, 지금까지도 그 공적의 전체 내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채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만주와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들어온 홍재하의 2남 3녀 중 차남 장자크 홍 푸안(76)씨가 브르타뉴 지방 생브리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30일(현지시간) 확인됐다.
 
그는 부친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인사들과 교류한 서신 등 희귀문서들을 누나로부터 2006년 물려받아 보관해오다 최근 한인 부부의 도움으로 이 자료의 정리를 시작했다.
장자크 씨에 따르면, 홍재하는 1920년대 파리의 미국인 사업가의 집사를 거쳐 프랑스인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번 돈을 계속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해방 후 처음 설치된 주불 대한민국 공사관 문서의 체류목적을 적는 난에 그는 "국속을 복슈허고. 지구상 인류에 평등허기를 위허여"라고 적었다. '국속'을 '國束'으로 읽는다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것에 복수하고 인류 평등에 공헌하고자 프랑스로 건너왔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국속'을 '國束'으로 읽는다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것에 복수하고 인류 평등에 공헌하고자 프랑스로 건너왔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오매불망 고국행을 그리던 그는 프랑스와 한국이 해방된 뒤에도 귀국하지 못했고, 고국이 다시 전쟁에 휩싸이자 비탄에 빠져 말을 거의 잃었다고 그의 아들은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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