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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946년]] [[9월 10일]] 박수형이 창간했다. 창간 당시 타블로이드 2면으로 발행했다. [[1949년]] [[9월 16일]] [[김지태]](金智泰)가 회사를 인수하여 제2대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그해 10월 대중신문(大眾新聞)을 흡수인수했다.
 
[[1951년]] 사옥 시설이 [[미군]] 산하 신문인 《[[스타스 앤 스트라이프스 (신문)|스타스 앤 스트라이프스]]》에 의해 강제 징발되었다가 2년 후 해제되었고, [[1953년]] [[11월 27일]]에 [[부산역전 대화재]]로 사옥이 불에 탔다.
 
1950년대 후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8년 지역 최초로 조·석간 6면 발행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9월 역시 지역 최초로 서울지사를 설치했다. 1959년 4월15일에는4월 15일에는 부산문화방송을 인수했다. [[김지태]]는 [[1952년]] 제4대 사장으로 재취임했고 [[1959년]] 자신이 개국한 [[부산문화방송]]을 겸영하다가, [[1962년]] 5월 5·16장학회(1982년 [[정수장학회]]로 개칭)에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의 지분을 넘기고 사장에서 퇴임했다.
 
1952년 4대 사장에 취임한 [[김지태]]는 [[1959년]] 자신이 개국한 [[부산문화방송]]을 겸영하다가, [[1962년]] 5월 [[5·16장학회]](1982년 [[정수장학회]]로 개칭)에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의 지분을 넘기고 사장에서 퇴임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기에 고 김지태 유족이 문화방송과 부산일보 주식반환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에서는 "주식의 불법적인 강탈은 인정되나, 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나서 반환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원고패소 판결로 판시하였다)
 
(2007년 5월 29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는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정부가 정수장학회(옛 부일장학회) 재산을 강탈했다고 결론내렸다. 1962년 부산의 실업가 김지태 씨가 토지와 문화방송 주식 등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것은 구속 수사 등 국가권력의 강압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원회는 국가가 김 씨 유족에게 사과하고 헌납받은 재산도 반환하라고 권고했다. <ref>{{저널 인용
1960년 4월12일 부산일보 1면을 통해 보도된 ‘김주열군의 시신 사진’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ref>{{뉴스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229915
|제목=과거사위 "부일장학회 강탈 맞다”
|출판사 =시사저널
|날짜=2007.05.29}}</ref>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김씨의 유가족들은 2010년 6월에야 법원에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등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14년 2월 13일 김지태씨 장남 영구 씨를 비롯한 유가족 6명이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5705810
|제목=김지태 유족, '정수장학회 반환소송' 패소 확정
|출판사 =뉴시스
|날짜=2014.02.28}}</ref>)
 
1960년 4월12일4월 12일 부산일보 1면을 통해 보도된 ‘김주열군의 시신 사진’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ref>{{뉴스 인용
|제목='4·19 도화선' 김주열 사진 특종 본보 기자 故 허종 씨 국가유공자(건국포장) 선정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2&aid=000036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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