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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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재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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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로쿠 5년([[1596년]]) 계속되어 왔던 명과의 강화 교섭이 결렬되어, [[게이초]] 2년([[1597년]]) 14만의 군으로 조선을 재침략하였다. [[칠천량해전]]을 시작으로 2개월 동안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석권하고, [[경기도]]로 나간 후, 조선 남해안에 [[왜성 (건조물건축)|왜성]]을 축조하여 장기 점령을 꾀한다. 이 후, [[울산성 전투]]에서 고전한 후, 전선을 축소하려는 무단파와 문치파간의 대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팔도 중에 남부의 4개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 명나라 황녀를 일본 덴노와 혼례시킬 것 등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무리한 요구를 한 탓에 강화가 결렬되었다. 문제는 중간에서 외교를 담당하던 [[심유경]]이 명나라에 거짓으로 보고를 했기 때문에 도요토미의 분노가 극대화되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