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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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밀라노시대 ===
[[1481년]]에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스포르차 귀족 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갔는데, 1482-1499년을 '''제1의 밀라노 시대'''라고 부른다. 밀라노에 간 목적은 스포르차 가의 선조인 프란체스코의 기마상 제작과 음악 교수 때문이었다. 약 12년 동안 화가로서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로서 오늘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암굴의 성모]]〉([[1483년]], [[루브르 박물관]])와 〈[[최후의 만찬]]〉([[1495년|1495]]~[[1498년]], [[밀라노]])이 제작되었다. 〈암굴의 성모〉에서는 레오나르도 특유의 화법인 이른바 환상적인 색감을 살리는 [[스푸마토]](Sfumato)가 첫선을 보이게 되며, 뒤에 이 화법을 바탕으로 유명한 [[모나리자]]([[1500년|1500]]~[[1503년]], 루브르 박물관)가 그려졌다. 스푸마토는 원거리에서 물체를 둘러싼 공기(대기)까지 그림으로써 완전한 [[삼차원]]의 세계를 그리는 기법으로 [[대기 원근법]]([[:en:aerial perspective|aerial perspective]])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당시 [[로마 가톨릭]]의 통제에 따라 제작되던 [[교회]] 미술계의 풍토를 깨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소신에 따른 작품 활동을 했다. [[1489년]] [[인체]]와 말의 [[해부학]]적 연구에 몰두하고, 인체의 해부와 [[새|조류]]의 비상에 관한 논문, 광학에 대한 연구에도 전심하였다.
 
=== 제2피렌체 시대시대★ ===
1500-1506년을 그의 '''제2의 피렌체 시대'''라고 하는데, 1499년 [[프랑스]] 왕 [[루이 12세]]의 밀라노 침입으로 1500년 피렌체로 돌아왔다. 여기서 제단화 <[[성 모자와 성 안나]]>를 그리고, 1502년에는 체잘레·보르지아에 토목 사업 운하 개발 도시 계획을 위해 초청되었다. 1503년에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그의 과학 연구가 한층 성하여 새가 나는 방법, 지질학과 물의 운동, 해부 등에 관한 수기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