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하계 올림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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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초반에 [[뉴질랜드]]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친선 [[럭비]] 경기를 하자 [[아프리카]] 국가들이 뉴질랜드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하였다. 이에 [[아프리카]]의 26개 국가들이 대회를 [[올림픽 보이콧|보이콧]]하여 참가국이 전 대회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카메룬,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는 보이콧에 동참하였으나, 일부 경기에는 참가하였다. 보이콧에 동조하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는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뿐이었다.
 
1970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 승인한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관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이유로 [[중화민국]]의 국호, 국기, 국가를 사용하는 팀을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캐나다 정부의 조치가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한 규정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에 국기, 국가 사용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참가를 허용하겠다고 선회했지만 중화민국이 캐나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대회 참가를 사실상 포기하였다. 한편 [[엘살바도르]], [[자이르]]는 재정 문제를 이유로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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