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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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은 개신교의 예배의 목적의 회당을 의미하여, 로만 카톨릭의 교회 통칭인 성당으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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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성구보관실 아래에는 '''성탄 토굴''' 또는 ‘베들레헴 토굴’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4세기 [[교회학자]]로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불가타]]) [[히에로니무스|성 예로니모]], [[잔 로렌초 베르니니]] 등을 비롯한 유명한 가톨릭교도들이 묻혀 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사제로 서품받은 다음 첫 미사를 1538년 12월 25일 이곳 대성당의 (중앙 제대의 앞 아래에 있는) 제대 위에서 집전하였다.
 
[[사도 궁전|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성당]]과 이름이 같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의 시스티나 예배당을성당을 장식하는 일은 [[교황 식스토 5세]]의 지시로 시행되었다.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때 누워 있던 말구유로 추정되는 성유물을 보존할 수 있는 예배당을성당을 설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에 의해 13세기에 세워진 최초의 성탄 예배당은성당은 성탄 구유 재현 장식과 함께 예배당성당 아래에 있다. 예배당의성당의 중앙 제대에는 제대 위의 닫집 위에 [[세바스티아노 토레지아니]]가 만든 네 개의 청동 천사상이 세워져 있다.
 
[[마니에리슴]]적인 내부 장식은 [[체사레 네비아]]와 [[조반니 구에라]]가 감독 아래 큰 규모의 미술가 집단에 의해 1587년에 시작해 1589년에 완성되었다. 최근에 미술 전기작가 [[조반니 발리오네]]가 각계 미술가들에게 특정 작업을 할당하여 연구해본 결과, 전부는 아니지만, 프레스코들의 수많은 사전 스케치가 네비아의 손으로 그려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발리오네는 또한 네비아와 구에라의 역할에 대해 “그림은 네비아가, 미술팀의 감독은 구에라가 하였다.”라고 요약하며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