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농민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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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접 ===
남접은 [[전라도]] 지역에서 일어났던 동학농민군으로 처음 거병한 집단을 말한다. 납접은남접은 접주인 [[전봉준]], 무장 대접주인 [[손화중]] 및 태인 대접주인 [[김개남]]을 최고 지도자로 나뉘어 있었다. [[전라남도]], [[전라북도]]에 영향을 미쳤으며 지도자들은 현지 출신 접주들 보다는 주로 [[고창]], [[태인]], [[전주]], [[옥구]], [[금구]] 등 전라북도 북부와 서부 출신들이 많았다. [[경상북도]]의 [[성주군]], [[칠곡군]],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도 남접의 세력권이었다.
[[파일:김개남.jpg|섬네일|전주화약이후 전봉준은 호남우도, 김개남은 호남좌도를 호령하였다. 사진은 김개남이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될 때의 모습]]
온건파인 무장 대접주 손화중은 같은 온건파인 [[전봉준]]에게 자신의 조직을 통솔하도록 맡겼고, 강경한 혁명파인 [[김개남]]은 혁명을 함께 하면서도 때론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전주화약 이후에는 전봉준이 금구에 대도소를 두고 전라우도를 호령하고, 김개남은 [남원]]에 대도소를 두고, 전라좌도를 호령하면서 [전봉준] 과 달리 독자적 행동을 하였다.<ref name="parkus261">박은봉, 《한국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3) 261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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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은 [[전봉준]]에게 호응하면서도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올리는 것과, 근왕주의적인 사상을 가졌던 점을 못마땅히 여겨, 전봉준과 수시로 충돌하였다. 이는 [[전봉준]]이 체포된 뒤 일본 영사관 형문장에서 진술한 공소장에도 일부 언급되고 있다.
<ref></ref>
 
=== 북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