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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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m 모바일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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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중요한 것은 제3장의 안전조항으로서,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체결을 위한 복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즉, 국제정치의 입장에서 일본을 반공진영에 편입시키는 성격을 띠었다. 이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미국이 이 회의를 주도하면서 상식선을 넘는 관대한 정책을 일본에 베풀었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한국은 일본의 전승국에 대한 전쟁배상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전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향유할 수 없게 됐다.
 
한편 1947년 3월 최초 초안문에서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할 영토에 [[독도]]가 포함돼 있었지만 1949년 12월의 개정판부터 독도는 빠지게 되었다. 이에 1951년 7월 한국 정부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는 물론이고 독도와 [[이어도|파랑도]]도 일본이 반환해야 할 도서의 목록에 포함시킬 것을 미국에 정식 요청했지만 1951년 9월 8일에 공표된 최종판에서 독도와 파랑도는 반환 도서 목록에 포함되지 못했고, 이는 결국 오늘날 일본의 [[독도 분쟁|독도 영유권]] 주장의 핵심 논거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