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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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 ===
==== 국고 탕진에 대한 비판 ====
유학자 [[황현]]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국고를 탕진했다는 점을 지적, 비판했다. 그리고 [[황현]] 자신의 저서 [[매천야록]]의 곳곳에서도 이를 언급하였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원자가 태어나자 궁중에서는 원자가 잘 되길 빈다는 핑계로 제사를 8도 강산에 두루 돌아다니며 지냈다. 이렇게 탕진하는 하루 비용이 천금이나 되어 [[내수사]]가 소장한 것으로는 비용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ref name="hwang35">황현, 《매천야록》 (정동호 역, 일문서적, 2011) 35페이지</ref> 마침내 [[호조]]나 [[선혜청]]에서 소장한 공금을 빌려서 사용했지만 그것이 위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1년이 채 못돼 [[대원군]]이 비축해 놓은 재물을 모두 탕진했다. 그래서 매관이나 매과<ref>돈을 주고 과거 합격증을 파는 일</ref> 까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ref name="hwang35"/>
 
그러나 국고 탕진에 대한 다른 자료는 없을 뿐더러, 내수사에서 관리하는 자금은 국고이지도 않았다. 내수사는 국고는 관리하지 않고, 국왕 및 왕실의 재산만 관리한다.